10개월의 도전과 실패 기록
제목 그대로다. 작년 8월에 파이썬 기초문법을 배우기 시작하며 이 분야에 발을 들였으니, 약 10개월 만에 포기하는 셈이다. (시작했던 시기의 글 읽기)
그동안 독하게 공부를 계속한 건 아니다. 풀타임으로 일하며 남는 시간을 활용했고, 그마저도 온전히 집중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대학원에서 수학과 통계를 공부한 것도 아니고 캐글 같은 공모전에 참여해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아니니, 어쩌면 포기 운운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10개월 동안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했다.
-. SQLD와 ADsP 자격증을 취득했다. (글 링크)
-. 코드파이트의 문제를 풀며 Python 알고리즘을 공부했다.
-. 패스트캠퍼스의 데이터 사이언스 '바이트 디그리 1기'를 수강했다.
-. <케라스 창시자에게 배우는 딥러닝> 독학 스터디로 신경망 모형을 공부하다 말았다.
데이터 사이언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머신러닝) 분야의 입구에서 서성이며 느낀 점은, 이 분야는 수학과 통계, 공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수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이 짜 놓은 코드의 변수를 바꾸는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하루 종일 코드와 씨름해야 한다. 전 세계의 최신 연구를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며, 특출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은 나로서는 모든 일상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회사일과 공부만 해야 한다.
늦게까지 코딩을 하고 관련 서적을 어렵게 읽어나가며 계속 자문했다. 이게 내게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인지. 분명 머신러닝을 포함한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야는 앞으로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꿀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와 기회가 생긴다.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커리어, 그리고 명예도 어느 정도 주어지겠지. 그걸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성에 30대를 걸고 배팅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나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난 그냥 평범한 문과 출신의 회사원이다. 루틴한 일과 프로젝트성 일을 병행하며, 때때로 버겁지만 보통은 해결 가능한 수준의 일을 처리하고 월급을 받는 수많은 직장인 중의 한 명이다. 그 안에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한.
하지만 지난 10개월은 그저 쓸모없지 않았다. 공부하고 이해하는 행위의 즐거움을 다시 느꼈고, 그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걸 찾았다. 왜 시험 기간에 보는 영화가 제일 재밌지 않은가. 공부 대신 할만한 걸 찾다가 테니스를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배운 걸 써먹고 있다. MSSQL로 데이터베이스 관련 업무를 보고, 구글 데이터 스튜디오로 사업부의 매출 대시보드를 구축했다. 데이터 시각화가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최근에는 태블로 무료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상당히 좋은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2기를 곧 모집한다고 하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링크를 참조하시길.)
"장래를 미리 내다보고 점과 점을 연결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짜 맞추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언젠가 인생의 어딘가로 이어져 열매를 맺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 스티븐 잡스, 스탠퍼드 대학 졸업 연설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하나의 점이고, 이를 포기한 것도 하나의 점이다. 아직은 이 점들이 무질서하고 보기 싫게 흩뿌려져 있지만, 언젠간 선이 될 것이다. 유일해서 아름다운 그런 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