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한테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바닐라맛 아이스크림보다 좋은 이유를 마케팅적으로 설명해봐요"
면접이란걸 열번은 더 본 것 같은데 내가 본 면접 중에서 이 질문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도 그럴거니와 나는 음악 회사 면접을 보고 있는데 대표라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묻는 걸까?질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아이러니한 상황 탓인지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이 질문은 어김없이 곱씹게 됐다. 아마나이 들어 잇몸이 다 헐어 뭔가를 씹기가 어려워졌을때조차 아이스크림하면 빙그레 웃으며 이 순간을 떠올리겠지.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콘아이스크림의 바닐라맛도 빵빠레도 내 입맛엔 느끼했다. 엑설런트라고 까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그나마 몇입 먹곤 했지만 내 돈 주고 사먹을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냥 싫은걸 어떻게 마케팅적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초코맛 아이스크림은.. 초코맛이 좋았는데...'
좋아하는 걸 왜 좋아하는지 고민하다보니 처음 초코맛이라는 걸 느꼈던 순간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준 가나 초콜렛이 혀에 닿았을 때 사르르 녹는 그 느낌. 쌉싸름하면서도 달달한 맛. 사탕의 오독오독하고도 날카로운 느낌과는 전혀 다른 그 포근함. 첫 느낌을 기억하고난 후 나는 서서히 입을 뗐다.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좋다기보다는 초코맛 그 자체가 좋았습니다. 처음 초콜렛을 먹었을 때 혀에 닿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는데요. 그 때 이후로 저는 과자도 초코과자, 우유도 초코우유, 아이스크림도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선호합니다.
이걸 마케팅적으로 풀어보자면...최초 상기도를 올려야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쪽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스크림좋아해요라고 물었을 때 바로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연상된다면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잘 팔리겠지요.
음악이라고 말했을 때 바로 이 브랜드가 떠오른다면 마찬가지로 다수의 고객에게 선택 받을 확률이 커질겁니다. 저는 그런 마케팅을 해보이겠습니다."
많이 떨었고 어버버하면서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초코맛 아이스크림과 마케팅을 연결시켰다는데 스스로도 놀라웠다. 도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인 건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신이 아닌 이상 내가 남의 속을 어떻게 들여다볼 수 있을까.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 가사처럼 가끔은 내 속도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실제로 이때의마음가짐이 얼마 안가 사르르 녹아 없어져버릴지도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여전히 초코맛을 좋아하고 음악도 늘 듣던 서비스만 애용한다.
마케팅에서도, 처음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최초상기도(Top Of Mind)
소비자가 여러가지 경쟁 브랜드 중 맨 처음 떠올리는 브랜드를 말한다. 시장점유율을 추정할 수 있는 브랜드 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