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로드킬]
“나도 안 해.”
B의 말이 나오자마자 버스는 속도를 높였고, 차창에 비친 건물의 간판과 사람들의 형체가 서서히 늘어지듯 멀어지고 있었다.
“예전에 요가했거든”
B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마치 혼잣말처럼 들릴 정도로.
“오빠가 여유를 좀 가지라고 회원권 끊어줬었어. 새벽 반.”
A는 아무 말 없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났고, 손잡이가 잠깐 흔들렸다. 그 소음은 두 사람 사이에 닿지 못한 채 지나갔다.
“처음엔 좋았어. 고요하고 회사 생각도 안 나고.”
B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매트를 펼치고, 구령을 외고, 몸을 접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잠시 시선이 흐려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동작을 하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
말이 이어졌지만 속도는 느렸다.
“내일 회의 준비 다 했나, 엑셀 데이터 정리하긴 했는데 뭐라고 요약하지. 차장님 기분은 괜찮으려나.”
B가 작게 웃었다.
“마지막에 누워서 호흡하는 시간이 있거든? 그때도 머릿속으로 메일 쓰고 있었어. 어제저녁에 보낸 메일 너무 길게 말한 건 아닌가. 링크는 잘 넣었나. 오타는 안 났나.”
A는 몰랐다. B가 새벽 수련에 들어갈 시간, 자신은 같은 시각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는 것.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것을 견디고 있었다는 걸.
“그만뒀어. 요가.”
B가 말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못 견디겠더라.”
버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몇 줄 앞에서 누군가 잠든 듯, 고른 숨소리가 들렸고, 잠깐 뒤 코 고는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끊길 듯하다가도 다시 이어졌고, 말 끝에 남은 침묵은 버스 안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누구도 그 침묵을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
A는 B가 회사에서 보여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늘 웃고, 늘 고개 숙이고, 늘 “괜찮아요.” 하던 얼굴. 그 표정 뒤에 이런 시간이 있었다는 걸, A는 이제야 알았다.
“정규직 됐을 때.”
B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창밖도, A도 보지 않은 채였다.
“기쁘다기보단, 그냥…. 계속 갈 수 있겠구나. 안 멈추고.”
말은 거기까지였지만, A도 그다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자리를 잡으면 다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라는 생각.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다음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 딱 그 정도의 안도감이었다는 걸. 굳이 말로 옮기지 않아도 전해지는 종류의 마음이었다.
정규직 전환 이후의 B의 하루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늘 하던 일을, 늘 보던 사람들과 해냈다.
책임이 늘어난 만큼 결정해야 할 것도 늘었지만, 결정의 범위는 여전히 정해져 있었다. 출근 시간은 조금 늦어졌고, 그 늦음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고, 도착하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리모컨을 쥔 손이 가끔 멈췄지만 무엇을 고르지 못하는 건지 B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늘’이라는 말은 안정처럼 들리기도 했고 동시에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는 뜻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