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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r 01. 2020

화장을 정말 1도 하지 않는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나타난 변화

재수 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한 번도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넌 예쁘게 태어나게 해 준데 감사해야 해."


엄마가 이렇게 말할 만큼 나는 요즘 사회의 사회적 기준에 맞는 이목구비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어릴 때 다리가 다쳐서 뼈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반년 간 병동에 입원하게 됐는데 누워서 맨날 먹기만 하다 보니 살이 기하급수적으로 쪘다. 입원하기 전에 시력도 안 좋아져서 도수 높은 안경을 쓰게 됐는데 크고 동그랗던 두 눈이 소면 면발처럼 가늘고 얇게 줄어들었다. 반년 간 병원에 입원하고 돌아왔을 때 나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즈음 외모에 신경 쏟던 아이들에게 따돌림도 당하게 됐다. 도피처는 소설책 또는 만화책이었는데 그래서 아직도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내 오른쪽 다리에는 네 개의 구멍이 파여있다. 이제는 그 자국이 다소 희미해지긴 했지만 내 다리가 상처가 있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또한 사실 잘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눈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렌즈라는 걸 처음 사용한 게 고3 수시 입학이 끝나고부터였다. 안경을 벗자 친구들이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당시에도 인기 있던 아이는 아니었기에 이러한 상황 변화가 다소 극적으로 느껴졌다.


"안경 벗으니 이렇게 예쁜데 왜 그런 거 계속 끼고 다녔냐."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는 걸 알긴 알까. 궁금했지만 딱히 따져 묻지 않았다. 너희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말하기엔 외모 때문에 받는 이점이 너무 컸다. 10대의 나는 고작 렌즈 하나 꼈다고 선망의 눈빛을 보내는 친구들 앞에서 들썩이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갑자기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게 떨떠름하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이 좋았다.


대학을 가면서 새로운 교우관계가 생겨났고 거기서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예쁘냐 안 예쁘냐의 기준이 참.. 슬픈 게 S/S, F/W 같은 트렌드에 맞는 화장을 해야 했고 유행하는 옷을 입고 알 만한 브랜드 가방을 메야했다. 그리고 그 모든 조건들의 밑바닥에는 마른 몸, 바람 불면 날아갈 듯 여리 여리해 보이는 여성스러움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오르막도 많고 내리막도 많은 교정에서 10cm에 달하는 하이힐을 자주 신었다. 돈이 생기는 족족 옷과 가방을 샀다. 뭐 먹자 그러고서 새 모이만큼 먹는 친구들을 보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그냥 받아들였다. 그즈음 나는 내 몸이 여리 여리하다 못해 안쓰러워 보일 때까지 살을 뺐는데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월경이 반년 간 진행되지 않을 정도였다. 예쁘다는 말은 물론 자주 들었다. 길거리에서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어딜 가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열아홉에 렌즈를 처음 꼈을 때와 달리 마음이 들썩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예쁘다는 말이 그렇게 가시 돋친 말처럼 불편하게 들릴 수 없었다.

왜 나는 나로서 사랑받을 수 없지?

친구들의 선망 어린 시선에 구역질이 났고 혼자 있을때 자주 토했다. 약속이 생기면 뭔가를 먹어야 하고, 섭식 장애인데도 정상적인 척해야 하니 매일매일이 가시덤불 속을 뚫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피폐해진 정신으로 살을 빼고 나니 몸은 금방 이전보다 두 세배로 불어났다. 예쁜 외모를 보고 다가왔던 친구들은 자연스레 차츰차츰 멀어져 갔다. 이 모든 순간들을 겪고 나니 나는 그냥, 예쁘다는 게 너무 허무했다.


그렇다고 또 내가 예쁜 걸 싫어하는 건 아니다.

어려서부터 매스컴 광고로, 동화책과 만화책, 소설책 통해 여자의 예쁨에 대해 그렇게 열심히 교육받아왔는데 아무렴 나도 다들 예쁘다는 걸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예로 20대 초반에 피터 브룩의 연극을 보러 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J 여배우를 마주쳤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가 자동으로 닫힐 때까지 여배우에게서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연극 상영 시간에 맞추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된다는 생각에 문이 거의 다 닫힐 때쯤 황급히 열림 버튼을 눌렀다. 여배우가 눈살을 찡그리는데 그마저도 예뻐 보여서 정신이 혼미했다. 간신히 탄 엘리베이터에서도 바보처럼 자꾸만 힐끔힐끔 그녀를 훔쳐보게 됐다.


그날 연극이 상영되는 공간은 구조가 참 특이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반층 정도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입장이 가능했다. 내 앞에는 당대의 톱 여배우가 12cm는 돼 보일법한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는데 학처럼 가느다란 다리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아찔했다. 혹시 저 얇은 발목이 꺾여버릴까 봐  나 혼자 마음 졸이는데 높은 하이힐 때문인지 종아리에 두터운 알이 빳빳하게 서있는 걸  수 있었다.


'아, 연예인도 종아리에 알이 있구나. 운동을 정말 많이 하나 보네.'


그제야 나는 현실 복귀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순간 내 앞에 여배우가 일반 여자 사람으로 느껴졌다 해야 할까. 모두가 바라는 여성적인 아름다움, 그것을 이루고 지키기 위해서는 사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여배우는 엄청나게 타이트한 식단 관리와 운동을 했을 것이다. 뚱뚱했을 때 사진에 악플이 많았고 다이어트로 화제가 된 여배우였으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 앞의 여성은 더 이상 예쁘다기보다는 짠해 보였다. 소위 연예인 식단이라 불리는 걸 먹어가며 기력이 바닥난 채로 운동을 해봤기 때문에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게 생겨났달까. 남들은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들 하는데 오지랖 넘게도 그때 그 순간의 나는 그랬다.


연극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나는 배우가 아니다. 나는 내 외모로 뭔가를 팔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게 이미지가 됐든 상품이 됐든. 나는 내가 나로 받아들여지길 원했지 누군가의 욕망을 대체할 어떠한 의무나 직업의식, 소명 의식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직업이 배우가 아닌데도 계속해서 내가 아닌 누군가를 연기했던 걸까? 사랑받기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스스로에게 참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집에 와서 하이힐을 내다 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받은 사랑은 또 금방 변질돼 버릴게 분명했다. 고등학교 때의 내가 그랬듯, 대학교 때의 내가 그랬듯.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예쁨이라는 결국 주름 지고 쳐지고 퇴색되다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들이 그때도 나를 사랑해줄까?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가 바로 끄덕여졌다. 그러니까 마치 달뜬 주전자처럼 팔팔 끓다가 종국엔 증발해버릴 수증기 같은 것들에 너무나 열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인데,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연예인 병에 걸려버린 것이었다.


그 후 젠더(gender;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남녀의 정체성) 관련 책을 관심 갖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성과 정치라는 교양 과목을 수강하기도 고 페미니즘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거의 모든 콘텐츠가 일관된 주장을 보여줬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성이란 학습되는 거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으로 흘러왔던 사회 문화 안에서는 여성이 사회적 아름다움에 대해 집착하는 것, 나아가 여성의 성 상품화는 사실 그걸 소비하는 남성들의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공급은 결국 수요에 맞춰 따라가는 것이었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 예뻐지길 원하는 게 물론 나라는 성적 주체의 선택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부분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렇게 구조화된 사회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자 나는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벌써 2년째 매일 크로스핏을 가고 있다.

크로스핏을 오래한 후로 좋은 점은 화장을 정말 1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운동할 건데 뭐하러...


후드티, 청바지, 롱 패딩 갈수록 입는 옷도 참 간결해졌고 생활 전반에서 점점 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가는 것 같다. 지금 가지고 있는 운동복이  닳거나 찢어지지 않는 이상 쇼핑할 거리도 없다.

배우는 대중의 욕망이 곧 생계로 이어지다 보니 이미지에 맞는 옷을 계속 사야 하고 그 옷에 맞게 체구를 줄여야 하며 두꺼운 화장을 해야 하지만, 일반 운동인인 내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게 다소 불편할 따름이다. 땀나는 운동을 매일 같이 해야 하니 화장은 거추장스러울 뿐이고 격식 있는 자리에 갈 것이 아니니 하이힐도 치마도 불필요하다. 게다가 운동을 오래 하다 보면 매일 입는 운동복만큼이나 내 몸에 편한 옷 또한 없다.


특히나 크로스핏에서는 남자처럼 힘자랑하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역기를 드는 일이 잦았고, 오래 하다 보면 광배근이나 햄스트링이 발달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후드티나 박스티가 좋고 치마보다는 청바지, 청바지보다는 레깅스가 솔직히 편하다. 소위 말해 사회적 여성스러움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운동이어서 몸 또한 마름보다는 탄탄함이 주가 된다 해야 할까. 매일 운동하는 사람들만 보고 생활 전반에서 운동이 주가 되자 나는 이제 마른 몸보다 근육 붙은 다부진 몸이 더 예뻐 보인다. 관점의 차이와 함께 일상의 루틴 또한 정해졌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요즘의 내 하루는 아래와 같다.


아침 - 회사 출근

점심 - 크로스핏

저녁 - 카페에서 마감시간까지 운동 관련 웹툰 그리기 또는 글쓰기(또는 서점에 가서 책 읽거나 친구들과 달리기)


정해진 루틴한 라이프를 살게 되면서 불필요한 술자리를 줄일 수 있었고 스스로도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사용하게 되면 일이든 사람 관계든 자연히 필요한 것들만 남기 마련이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줄어드니 당연히 생활이 편할 수밖에 없다. 매일 운동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생활에서도 그다지 많은 코스메틱과 옷이 필요하지 다. 신기하게도 이건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닌데,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의견에 공감했다.  

"운동 후 운동복 벗고, 씻고, 다시 운동복 입는 루틴이 반복되고 있어요"

"괜히 멋 부리려고 옷 샀다가 아이씨, 패딩 살 걸 후회했음"

"예전에는 옷 좋아해서 자주 샀다가도 운동 시작하고부터  맨투맨 세 개만 돌려 입어요"


관련 웹툰을 업로드하고 나자 꽤 많은 운동인들이 이렇게 공감했다. 이를 통해 나는 루틴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좋아서 자주 하는 것들이 환경을 만들고 환경이 곧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 그리하여 이제 운동인들에게 멋이라는 건, 예쁨이라는 건 얼마나 운동 동작을 더 멋지게 수행했느냐, 얼마나 더 최선을 다했느냐가 아닐까.


"맨날 하는데 살은 왜 안 빠진 거야?"

"근육 더 붙은 거봐. 등이 넓어졌네."


그럼에도 이따금 이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무례한 지인들이 있다. 나는 남들 눈에 예뻐 보이기 위해 운동하지 않은지 오래됐다. 그냥 재밌어서 운동한다. 살다 보면 닥쳐올 예상 못한 상황과 힘든 일들에 대비하기 위해 정신줄을 단단하게 붙잡으려 운동한다. 몸이 피로해서 마음까지 병들지 않게 하기 위해 꾸준히 체력을 증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민낯으로 좀 더 당당해지는 여성이 됐고, 위와 같이 예의 없게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웃어넘기거나 무시해버리고, 늙어서 벽 붙잡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여러분들도 운동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자신감이 생겨버렸다.

 

나는 운동 외에도 적절한 식이와 수면 시간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스트레스받지 않기 위해 먹고 싶은 걸 먹는데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몸 건강을 위해서 되도록이면 한식이나 채소, 과일 같이 건강한 것들을 많이 챙겨 먹으려고 한다. 최근에는 내 몸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채식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고 있긴 하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하고 음식마다 추억이 있어서 이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내 몸에 대한 관심, 내 정신을 충만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꾸준히 열려 있는 내 자신이 좋다. 운동 외적으로도 남들이 만들어놓은 배역을 연기하기보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고유한 캐릭터가 되고 싶다. 한 번도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사실, 내 눈엔 내가 나다울 때가 제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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