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촘촘이 인사이트 기록하기
이탈리아 젤라또 일주의 목적은 내가 추구하는 맛과 식감을 구체화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인사이트를 마구 흡수하기 위해서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기록의 힘을 절실히 믿는다. 특히 맛의 영역은 깊게 파고들지 않으면, 나중엔 단순히 ‘맛있다. 맛없다’ 정도의 막연한 감상으로 휘발되기 마련이다.
소중한 시간과 돈을 쓰는 만큼, 최대한 모든 영역을 흩날리지 않게 온전히 기록하고 싶었다. 젤라또 자체의 맛은 물론, 전반적인 공간 경험(인테리어 및 고객 동선)도 신경써서 포착하고자 양식을 만들었다.
한정된 시간 속 많은 가게를 돌고, 수많은 인파 속 수월히 작성하려면 규격화된 양식이 좋다. 모든 가게를 동일한 기준으로 바라보는게 좀 더 객관적일 것 같았다. 양식을 만들땐 와인 테이스팅 노트를 참고했다. 와인과 젤라또는 당도와 끝맛, 바디감(무게감) 등 맛을 좌우하는 부분이 상당히 겹치는게 많다.
크게 총 3가지 영역으로 구분했다. 가게 정보와 맛(+식감), 그리고 오렌지캡(나만의 기준)이다. 맛은 직관적이라 짧은 시간 내 느껴지는 감상이 중요하다. 빠르게 체크하고 가게별로 비교할 수 있도록, *리커트 척도를 사용했다.
*리커트 척도: 양극 척도 방법으로, 긍/부정 정도를 나타낸다
예시) 전혀 아니다 - 아니다 - 보통이다 - 그렇다 - 매우 그렇다 등
처음에는 아래 양식을 프린트해 수기로 작성했지만,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를 위해 여행 도중 구글폼으로 디지털 문서화시켰다.
내 기준 맛있는 젤라또는 원재료의 고유한 맛을 극대화하고, 먹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는 와우포인트가 있는 것이다. 양식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그런 와우포인트를 일으키는 젤라또의 특징이 뭔지 몰랐다. 테이스팅 노트를 통해 (내 기준) 몸이 짜릿하게 반응하는 젤라또를 아카이빙하고, 공통된 특징을 찾고 싶었다.
(1) 맛
젤라또는 아이스크림보다 지방 함량이 낮고 공기도 적게 들어간다. 그렇기에 칼로리도 적고 맛에 밀도감도 있는 편이다. 내가 갖고 있는 젤라또에 대한 신념은 ‘젤라또는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선한 원재료를 써야 하고, 글루텐 프리거나 대체당을 쓰는 거면 더더욱 좋다. 따라서 맛을 판단할 땐 당도와 신선한 재료의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했다.
신선도는 입에서 느껴지는 생경한 감각은 물론, 가게에서 쓰는 재료의 성분표 및 원산지도 고려해 판단했다. (수제 젤라또 가게는 재료의 성분을 가게 내부 또는 자체 웹사이트에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젤라또는 금방 녹으니 빨리 먹게 되지만, 그럼에도 맛의 서사가 있는 기특한 디저트다. (1)차가웠을 때 베어무는 첫 맛과 (2)입 안에서 녹아들며 퍼지는 맛, (3) 다 먹고 나서 감도는 잔여감까지. 개인적으로 젤라또를 먹고 나서 텁텁한 끝맛이 있는걸 선호하는 편은 아니라, 끝맛도 맛의 평가 요소로 넣어뒀다.
(2) 식감
내가 젤라또를 아이스크림보다 좋아하게 된 건 식감이 재밌어서였다. 부드럽거나 쫄깃하거나, 가볍거나 녹진하거나. 젤라띠에레(젤라또를 만드는 직업)마다 각자 추구하는 바가 달라, 식감도 제각기인게 참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식감을 세분화했다.
부드러운 정도와 맛의 점성(차지고 끈끈한 성질), 무게감과 온도감으로 영역을 구분했다. 젤라또는 3개의 감각이 반응하는 복합적인 음식이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는 건 기본.거기에 스푼으로 떴을때 느껴지는 촉각도 더해진다. 맛보기 전 젤라또를 휘저었을 때 느껴지는 저항감도 맛에 어느정도 영향을 준다고 본다. 가볍게 슥 떠지면 부드럽게 느껴지고, 찰싹 달라붙어 쉽게 안 떼지면 꾸덕하게 느끼는 것처럼. 하여 무게감으로 촉감의 영역도 판단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우리나라보다 젤라또의 온도가 높고 크리미한게 많다고 들어, 실제로 입안에서 느껴지는 온도감이 어떨지 궁금했다.
다음으로 젤라또 가게의 기본 정보 및 고객 경험을 기입하는 영역이다. 기본 정보로는 이름, 위치, 가격이 해당된다. 젤라또는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각 가게마다 레시피도 다르고 젤라띠에레의 성향을 많이 탄다. 가게 영역에선 서술형의 비율을 높여 가감없이 솔직하게 느낀 점을 쓰고자 노력했다.
먹은 맛에 대해 연상되는 주관적인 감상평을 적고, 메뉴 구성 또는 인테리어 등 특이점도 기입하는 란을 넣어뒀다.
*수기로 작성하던 양식을 구글폼으로 변경 (아래는 구글폼 중 가게 정보 영역을 캡쳐한 이미지)
마지막으로 *오렌지캡 점수다. 이게 뭐냐면, 나름 나만의 미슐랭 또는 블루리본 같은 맛집 평가 지표다. 각 미식 기관이 별 갯수에 따라 맛집을 평가하듯, 내 기준 젤라또 탑티어 맛집에 오렌지캡을 부여했다.
*오렌지캡: 이탈리아는 지중해에 있어 오렌지가 잘 생산되며, 내가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이 볼캡이기에 둘을 갖다 붙였다.
0개: 해당없음 (굳이 방문할 필요 없음)
1개: 다시 방문해도 손색없는 곳
2개: 전문적인 스킬, 신선한 재료, 맛 모두 훌륭
3개: 이 젤라또를 위해 여행 올 가치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