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증권사 싱글남의 여피스런 일상다반사
인생수업, 그리고 스님의 주례사.
가장 큰 깨우침은 인연에 대한 맺고 끊음이다. 나는 오고 가는 사람의 인연에 대하여 큰 감정적인 변화가 없다. 그게... 차갑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기보다는 나도 무척 감성적인 사람이고 그러한 시절을 겪으면서 많은 굴곡의 울림이 더 컸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자살을 하고 배가 갈려진 어머니를 배를 보기도 했고 거의 죽어가던 여동생을 음압에서 바라봤고 10여 년 전에 파혼도 했고 하늘이 노랗게 보인적도 있었고 넉달을 탄광에서 보낸적도 있었으며 나 역시도 절벽 같은 죽음의 문턱을 몇 번 겪고 나니 그렇게 삶에 대한 불필요한 집착은 적어졌고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에 따라 호들갑을 떨지 않게 관조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엔 그러한 경험을 겪고 나니 원래의 낙천적인 성격은 염세적으로 갔던 것이 이미 10대 때였다. 하지만 의지로 그 터널에서 벗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 다시 20대였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의 도움도 컸다.
그러다 30대 중반의 법륜의 책들은 인연에 대한 오고 감에 대하여 거스르지 말고 문제를 찾자면 나 자신에게 묻고 찾고 답도 같이 꺼내라는 부분은 어찌 보면 천주교의 내 탓이오와 격이 맞기도 하다. 결국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도 그러한 자기반성이 없다면 다다를 수 없는 궁극의 지경일 테다. 불교에서 받은 도움을 꼽자면 인생을 한 걸음 떨어져서 관조함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고 가는 인연에 대한 스탠스는 늘 물 흐르듯이 바라보라는 점이다. 엄청난 집착도 필요 없고 엄청난 분노도 필요 없다. 그것은 차가운 것이 아니라 너그러운 것이고 놓아달라고 원하는 이가 있다면 그들의 마음대로 놓아주고 소원이 있다면 최대한 상대방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다. 내가 손해가 될지언정. 물론 당장에 들이닥친 큰 사건에 감정은 일시적으로 소용돌이칠 수도 있겠지만 그게 하루 이틀을 가지 않는다. 감정은 불 같아서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하지만 또 찬물을 던지면 꺼진다. 평정을 찾는 것은 몸에도 해롭지 않고 실수도 적다.
페북에서도 정말 세상이 끝날 때까지 같이 하고픈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는 정말 멋진 그룹이야 라고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단 하루 만에도 표절을 하고 인연을 끊는다.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함께 머물렀던 그 인연의 시절은 좋았으니 좋았던 것만 내 기억의 서랍에 남겨왔다. 나를 위해서도, 떠나간 님을 위해서도.
나는 노인이 되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누군가의 말을 곧잘 인용했다. 30대는 노동으로 벌고 40대는 자본으로 벌고 50대는 인맥으로 벌고 말이다. 그래서 사는 동안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또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더라. 가끔 보면 과거를 부정으로만 기억해서 사진과 글을 다 지운다는 사람들도 일부 본 적이 있다. 가능하면 돌아보건대 흐뭇한 기억이 많게 살면 좋지 않을까?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니고 사진도 많이 찍는 이유도 그렇다. 현실은 대체로 비루하다. 회사가 즐거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퇴근하고 플렉스하고 여행하고 인스타에 올려 행복의 기억만 남기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인생의 차선이 두 차선이라면 선택은 본인의 몫이라고 하지 않던가? 행복과 불행은 선택의 영역일 뿐이다. 일어난 일은 언제나 잘된 일이다. 이 극강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라. 당장에 들이닥친 일만 마이크로 하게 집착하지 말고 인생도 매크로로 보면 이게 또 새옹지마가 되기도 한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원래는 스님의 주례사와 인생수업 두 권이 있었으나 오래전에 사귀던 연인에게 스님의 주례사를 빌려주었다. 빌려준 이유는 빌려줘야 읽기 때문. 어차피 읽고나도 그냥 주려고 했었다만 인연이 아니어서 돌려받지도 못했다. 그 책도, 그 사람도 내게는 인연이 아닌 것이다. 그게 한 5~6년쯤 되었을까? 바쁜 백수생활이라 과로사 염려도 있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두 권을 모두 읽고 싶어 졌다. 이따 가로수길 서점에 가서 새로운 스님의 주례사를 구입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