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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Yeun Dec 26. 2021

독 거 일 지

저돌적 한량


어제 아이맥을 사러갔던 곳은 한남동의 한 빌라. 느낌상 82 정도 되어보이는 핸섬한 남정네가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방 2개짜리의 집은 깔끔했고 중고나라에서 본 그 CTO 사양의 아이맥이 작은방에 자리잡고 있었다. 방을 둘러보니 고프로가 짐벌에 달려있고 DSLR,드론, 맥북, 브롬턴, 바이올린, 여러 오나먼트들 그리고 밖에 세워져있던 1시리즈 비엠까지...내손을 거쳤거나 고려했던 것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댄디한 이 친구는 친절하게 자기가 내놓을 아이맥을 설명해주다가 자연스레 취미며 독거(덕거?) 라이프와 명품 이야기 등등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길래 증권사 쪽이라고 말을 하니 그쪽은 건축 디자인 쪽이고 여의도 에스트레뉴에 있다가 지금은 샛강쪽에 있다고 하더란. 비슷한 점들이 많아 조금 신기하긴 했다. 



여유로운 독거를 즐기는 남성들이 많아진듯 싶다. 30대 후반 전문직이나 대기업권이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상 직장생활은 얼추 10여년을 채웠을 것이고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자리잡고 여유있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평화로운 일상을 침범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애에 대하여 생각이 점점 없어지는 것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관계를 맺는 것이 피곤해진다.솔직히 페북상에서 보이는 수많은 비지니스 모임 사진들 이면에 얼마나 많은 일들 소용돌이 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disguising이 disgusting 한지 느껴진다. 언니 언니 형님 형님하면서 관계를 맺지만 결국엔 돈 달라고, 돈 벌어달라고 하는 것들 그리고 딜이 쉽게 깨지면 언니는 그년이 되고 형님은 그 새끼가 된다. 그냥 독거는 남에게 손 안벌리고 유아독존 하는게 낫다고 본다. 



모임도 그렇지만 결혼 생활은 무척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친구들은 하나 둘 돌싱으로 돌아오고 있고 몇 년간 험난한 오지여행을 다녀온듯한 소감을 뿜는다. 일부 종족들이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하니 다녀오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하지만 이혼해본 사람들에게 그것은 '개소리' 혹은 기혼이라는 별거 아닌 것을 인생의 훈장이나 나의 업적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의 어쭙잖은 아는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끔 나는 이렇게 묻는다. '지금도 결혼을 후회하고 자유를 갈망하면서 왜 그럼 어차피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면 이혼하고 자유라도 찾지 그러냐' 고. 그러면 말문을 막혀한다. 이혼이 얼마나 피눈물 나는 일인가... 나는 30대 초반에 파혼을 하면서 죽다가 살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모르면서 아는척 하는 이들이 꼰대되기 쉬운 족속이다. 어떻게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남에게 가이드 한단 말인가? 



아이맥을 건넨 그에게 있어서나 나에게나 기혼친구들을 보면 고생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긴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들의 어깨를 누르는 것들이 참 많다. 가끔 그들이 결혼 안한 이들에게 결혼을 안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말을 할때마다 난 그들의 '나의 마지막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 였어...' 라는 말에 역시나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들은 주말에 애를 보느라 나오질 못한다. 주말에 머해? 애나 봐야지 머.... 나는 주말을 묻지 않는다. 



딱히 무얼 이뤄야한다는 것도 없다. 예전에는 어찌되었든 승진을 해서 남을 밟고 올라가 어깨에 견장을 달아야겠다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천천히 느리고 오래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게 아니더라도 회사가 아닌 회사 밖에서 인생의 가치를 찾곤 한다.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최고 가치는 회사가 아니라 여행이다. 많은 유러피안들이 휴가를 위해 일을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나도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한동안 내 페북 담벼락 이름이 '여피같은 삶'이었고 지금은 '코스포폴리탄'이다. 둘다 여행과 뗄수가 없는 말들이다. 




나이 40 전까지는 그래도 결혼을 하면 좋겠다라던 생각도 근래 들어서는 많이 사라졌다. 노총각 처녀에게 결혼은 '끝내지 않은 방학숙제'와도 같아 방학이 끝나기전, 그러니까 나이가 어느정도 차기전에는 끝내야 할 숙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데드라인에 가까워지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가족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가치는 주관적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편안하고 평화롭고 풍족하게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의 생각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바뀌면 그때 그때 합당하게 바뀐대로 행동하고 유연하게 살면 된다. 자녀가 진짜 필요한 사람들은 어떻게해서는 생물학적 나이에 쫓겨하면 될 것이고 그게 아닌 사람들에게 결혼이란 반드시 해야 할 '때'는 없다. 




독거노인=DKNY



#4년전쓴글 #생각은조금변함 #그럴줄알았음 #독거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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