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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문

좋은 아침

by 정재혁

오늘은 아침에 가뿐히 일어났다. 오래 잔 것도 아닌데 여느 때와 달리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의 저자인 할 엘로드는 아침에 눈 뜨는 게 기다려질 만한 습관들이 있다면, 아침이 보다 즐거울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선물 생각에 눈이 금세 떠지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내게 크리스마스만큼이나 큰 선물이 기대되는 날이었다. 오늘따라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진 것이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선물을 기다리는 동안의 기분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설렘과 불안이 각각 씨줄과 날줄이 되어 얽히고설킨다. 낙관과 비관도 마찬가지. '될 거야, 아니 안 될 수도 있어' 하며 수 십, 수 백 번 천당과 지옥을 반복한다. 치열한 내적 다툼 속에서도 승리는 대개 낙관의 몫이다. '설마 이번에도 안 되겠어?' 그러나 막연한 기대는 번번이 배신당하기 일쑤다. 그렇다. 나의 막연한 기대는 이번에도 배신당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최종 면접장의 나를 다시 떠올려본다.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 그러나 판단은 내가 아니라 면접관의 몫이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합격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었나 보다. 탈락의 쓴 맛을 본 게 이번 만은 아닌데, 오늘은 유독 입 안이 쓰다. 물을 몇 잔이나 마셨는데도 쓴 맛이 가시지가 않는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에는 기대가 꽤 컸었나 보다. 설에 모인 친척들에게 '요즘 뭐하냐'는 핀잔 듣기 싫어 최종 결과 기다린다고 떠벌였고, 월말에 있는 고등학교 동창 결혼식에 당당한 모습으로 참석하고 싶었고, 믿고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께 이번에야말로 합격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울적한 마음에 친한 형과 맥주 한 잔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메시지가 한 통 왔다. '오빠! 저 OOO 스포츠 아나운서 합격했어요!' 예전에 잠시 스터디했던 아이였다. 반가움과 동시에 비참함이 가슴을 후벼 팠다. '나도 합격했어!'라고 답장했다면 얼마나 좋은 그림이었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는데 말이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쓰고 있는 내 손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창백해 보였다. 어두워서 그래. 기분 탓이겠지. 내일 아침은 쉽사리 눈을 뜨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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