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전 29년을 사는 동안 나의 카페 최애 메뉴는 캐모마일티였다.
카페인이 들어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리는 증상때문에
'커피'의 '커'자도 제대로 모를만큼 나는 선택권 없이 카페인이 없는 차 종류를 주로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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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하고 수유도 분유로만 하게 된 5개월 차 엄마의 어느 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모르고 사는 내게
마카롱과 커피 두 잔을 들고 친구가 왔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는데-
와! 이렇게 시원하고 정신이 또렷해질 수가!
몸에서 카페인 반응은커녕 어디선가 원천을 알 수 없는 힘이 솟기 시작했다.
이 날 이후로 커피를 못마신 날에는 어쩐지 더 힘이 없었고
육아가 힘들다가도 시원한 아.아 한 잔이면 다시 육아가 또 할 만해지는 각성효과를 얻게 되었다.
괜히 '커피수혈'이라는 말이 있는게 아니구나라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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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요가지도자 동기 쌤이 최근에 예쁜 아이를 출산했다.
이 쌤 또한 나처럼 카페인 반응이 있었고 원래도 몸이 찬 성질이기에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쌤이 출산한 지 한 80일쯤 되었을까-
선물을 사들고 간 쌤의 집에서는 아주 따스한 보이차의 향이 났다.
다도 식기를 모두 갖추고 있을 만큼 차를 좋아하는 쌤은 이 날도 세차 하는 것부터 보여주며
따뜻함이 가득한 맛있는 보이숙차를 내려주었다.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도 차분하게 차를 내리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 그 자체였다.
다도의 시작을 알리는 세차를 시작으로 찻잔을 데우고 차를 내리는 그 과정 속에 잠시나마 명상이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며
이걸로 육아로부터 오는 피곤함과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는다고 했다.
육아가 처음인데 이렇게나 자신의 삶을 우아하게 조절하다니 진심으로 감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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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또 시간이 흘러 쌤의 이쁜 아이가 6개월 쯤 된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온 쌤은 퀭한 얼굴로 현관문에 들어서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쌤! 나 아이스아메리카노 찐하게 한 잔만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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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이 온다고 차를 꺼내는 중이었던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역시 엄마라면 '아이스아메리카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