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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11. 2022

안녕 런던, 여행의 시작

도망치듯 떠난 여행의 솔직하고도 담백한 기록

나는 항상 시작이 느린 아이였다. 운동선수 생활을 시작한 것도, 수능 준비를 시작한 것도, 희망 대학을 정하는 것도, 심지어 잃어버린 꿈을 되찾는 것까지도 매번 남들보다 한 발짜국씩 늦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남들보다 빨랐던 게 딱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취업이다.


대학교 3학년, 모두가 취업 준비에 한창이던 때에 나는 홀로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교환학생을 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게 생각지도 못하게 글로벌 기업의 인턴쉽으로 이어졌고, 인턴쉽은 취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참 신기하지?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운이 좋았다. 청년 실업이 주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헬조선에서 취업 준비 기간 없이 반짝이는 사원증을 목에 걸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모든 게 다 좋았다. 시작이 순조로웠던 만큼 결말에 대한 기대는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비웃기나 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물음이 나를 집어삼켰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이렇게나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내가 이곳을 나가게 된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



첫 회사를 다니는 기간 동안 나는 꽤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업무가 힘들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게 친절했으며,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도 업무와 나의 삶의 워라밸을 감안한다면 결코 나쁘지 않은 액수였다. 아니 지금 생각해본다면 꽤 비싼 값을 받으면서 생활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왜일까?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에 대한 익숙함이 늘어갈 때마다 내 마음 한쪽 귀퉁이에서는 그것과 동일한 크기의,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불안이 자라났다. 불안은 모순적이게도 내가 회사에서 느끼는 안정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누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참 지랄맞은 성격이라고 욕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왜냐면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긴 하거든.


회사를 다니며 나는 참 많이 행복했는데, 그러면서도 매일이 불안한 하루를 살았다


처음으로 물음에 집어 삼켜진 뒤로부터 수없이 많은 밤이 가고, 계절도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내 마음 속의 의문만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고민들로 마음이 복잡해지고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생각마저 들던 그때, 나는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나의 런던 여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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