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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11. 2022

더 이상은 경주마처럼 살지 않겠다

깜빡거리던 신호등이 바뀌자 차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엑셀을 밟는다. 3개의 차선을 사이에 두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 한국과는 다른 횡단보도에 눈길이 머문다. 줄무늬가 없어 왠지 허전한 텅 빈 횡단보도의 양쪽 끝에는 각각 LOOK RIGHT, LOOK LEFT라는 두 개의 단어가 적혀있다. LOOK RIGHT, 오른쪽을 보세요. LOOK LEFT, 왼쪽을 보세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아무리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던 사람이라도 잠시 멈춰 양옆을 살피고 길을 건넌다. 당연하다고? 그래, 당연한 일이다. 차가 보행자의 왼쪽 또는 오른쪽에서 다가오니까. 그런데 말이야.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다시금 인지하고 나니,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횡단보도를 만나면 잠시 쉬어가야 하는 것도, 길을 건너기 전에는 좌우를 살펴야 하는 것도 모두 당연한 일이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걸까? 잠시 멈춰 좌우를 보고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 횡단보도가 놓인 곳이 2차선 도로일 수도, 8차선 도로일 수도, 아니면 16차선 도로일 수도 있는 건데. 왜 내 인생에는 인도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살다 보면 맘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날을 종종 만난다. 그런 날에는 마음 한구석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자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내 마음을 집어삼킨다.


그림자가 닿는 곳마다 '남들은 속 편하게 잘만 살아가는 세상을 나는 왜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에도 이렇게나 버거운 건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하는 원망이 피어오르고,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로 낙인찍는다.


사실 맘대로 되지 않아서,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잠시 멈춰 쉬어갈 수 밖에 없는 날들이 있어서, 더 많은 것들을 만나고, 어쩌면 전에는 알지 못하던 즐거움도 발견할 수 있는 건데 하루를 당연하게 살다보니,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이 당연한 이치를.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그동안 잊고 살았다.



그래. 앞을 잘 보고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가끔은 땅도 보고, 옆도 보고, 고갤 들어 하늘도 보고, 그러면서, 그래 그렇게 살자. 강아지들이 산책할 때처럼, 가려는 길을 잘 걷다가도 옆에 자그마한 꽃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으면 인사도 나누고, 바람타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민들레 홀씨를 잡으러도 다니고, 처음 가는 곳에서는 잠시 쉬면서 흙냄새도 맡으면서, 그래 그렇게 살자. 


앞만 보고 달리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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