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은 시차에 노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여행지에는 일상의 것과는 다른 공기가 흐른다. 런던에서 맞이한 첫 아침, 그날 아침의 거리에는 따뜻하면서도 밝은 공기가 흘렀다. 하지만 우리네의 일상이 그러하듯,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선 온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그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깊은 어둠이 내렸다.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알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나는 알지도 못하는 런던의 어느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거리 위에서 나는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한 무리의 일부였으나,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집단에 속해 있는 자가 없었다. 우리는 같은 시간, 공간에 분명 함께 존재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결코 하나로 섞이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철저하게 일상에서 배제된, 완벽한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쉽지만 어려운 문제를 하나 풀고 나니, 그제서야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날 아침 내가 걷던 그 거리에서 나는, 내가 살던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처참하게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그것이 여행자 또는 이방인이라는 단어로 정의되는 나의 존재가, 그리고 런던이라는 도시가 나에게 선사한 첫 번째 선물이었다
근위병 교대식이 진행되는 날이면 버킹엄 궁전 앞은 장사진을 이룬다. 남녀노소, 국적과 인종을 막론하고 세계 각국에서 런던을 찾은 관광객들이 행진 하나를 보기 위해 버킹엄 궁전 앞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교대식은 보통 오전 11시 전후로 진행이 되지만,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2시간 전인 9시부터 치열하게 진행된다. 즉, 좋은 자리에서 교대식을 구경하고 싶다면 적어도 9시에 나오는 열의를 보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조금 신기한 건, 10시까지는 광장 앞에 모인 사람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10시 30분을 기점으로 완벽하게 바뀐다. 10시 30분이 지나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 인파가 버킹엄 궁전 앞 광장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를 구경하며 잠시 시간에 대한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는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 따로 있는 것처럼, 각자에게 맞는 시간대가 분명 있는데, 어느샌가부터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온 사회의 시간대에 갇혀, 나의 시간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시간을 지켜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 별거 아닌 것들을 지켜내는 게 생각보다 힘든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