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로 Aug 19. 2022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카피라이터의 글이 좋다

글의 취향 | 내가 사랑하는 글의 공통점을 찾다

나는 여전히 텍스트가 좋습니다


틱톡과 유튜브를 비롯해 영상 콘텐츠가 흥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길이가 제각기 다른 영상 클립은 무료한 시간을 순식간에 1km 상공으로 날려 보낸다. 그 결과,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은 없으면 허전한 일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일 지경이다.


Photo by Ilya Pavlov on Unsplash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이지만, 나는 여전히 텍스트화 된 콘텐츠를 가장 선호한다. 정제된 의사소통을 하기에 최적화된 수단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효율성과 생산성을 찾는 내게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는 형식이지. 콘텐츠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도 퍽 마음에 든다.


취향도 가끔씩 바뀌곤 합니다


책을 좋아한다. 책을 읽기 전 방의 조도를 조정하고, 차를 우리고, 집중을 도울 피아노 곡을 선택하는 일련의 과정은 물론이고, 그저 멍하니 앉아 퀴퀴한 먼지 냄새가 짙게 베인 종이를 한 장씩 넘기며, 나열된 활자들을 쉴 새 없이 눈으로 흡입하는 행위 자체도 사랑한다.


사회초년생 시절까지만 해도 자기 계발서를 바삐도 읽었다. 시간을 투자해 무언가를 학습한다면 반드시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식의 획득과 사용이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하는 자기 계발서가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학습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자기 계발서를 서서히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읽을 만한 건 다 읽었다 싶었다.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문장이 조금씩 다르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골자는 동일했다.


Photo by Lilly Rum on Unsplash


'저걸 왜 돈을 주고 사서 읽지?' 하는 생각만 하던 에세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딱 그 무렵부터다. 처음은 역시나 별로였다. 우울하거나 삶이 힘든 사람들이 유독 많은 분야였다.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 '내일부터 열심히 살아야지'하는 다짐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에세이를 읽으면 어쩐지 내가 벗어나고 싶은 삶에 더욱 잠식되는 느낌을 받았다.


수많은 에세이 도서 사이에서 카피라이터들의 책을 만나며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이제야 사람들이 왜 그토록 에세이에 열광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SNS 채널에 올라오는 화려한 일상이 아닌, 방황하고 흔들리는 삶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먼저 걸어간 자들의 고민과 분노와 슬픔과 우울함 속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모두가 역경을 딛고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이 정도의 머뭇거림은 괜찮은 거 아닌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책 읽으면서는 잠깐 쉬어도 되는 거 아닌가? 처음으로 책을 읽는 행위가 학습이 아닌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였다.


정제된 글을 사랑합니다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작가들의 책을 나열해 본다. 하나같이 작가의 색채가 뚜렷한 책이다. 다른 사람들은 쓰기 힘든 유별난 주제를 다루거나, 서술된 문장에서 어렵지 않게 작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뾰족함이 새겨진 글을 사랑한다.


출판의 문턱이 낮아진 시장에서 이런 책들을 만나는 건 은근히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책을 쓸 수 있고,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지만, 모두가 타인에게 울림을 주는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싶으면서도, 늘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유미 작가님의 <문장 수집 생활>과 김민철 작가님의 <모든 요일의 기록>이라는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두 책 모두 문단 전체가 호흡이 짧은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 신기한 건 글을 읽으면서 호흡이 끊어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마 이런 게 '글을 잘 쓴다'라고 하는 거겠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말이죠


사람마다 '잘 썼다'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 모두를 만족하는 글을 쓰기는 어렵다. 그러니 남을 만족시킬 만한 글을 쓸 게 아니라, 내가 나임을 드러낼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여러모로 이로운 선택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글처럼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일의 완성도는 시간의 축적이 일정 필요한 법이니 일단은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기록을 남겨보자고 다짐한다.


Photo by Kaleidico on Unsplash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출판의 기회를 얻을 수고 있을 테고, 또 내 글을 좋아하는 나름의 팬들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성에 차지 않는 글을 많이도 써야겠지만, 또 그 과정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을 테니 지레 겁먹을 건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가 '아직은' 쩌리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런데 어쩌라고'라는 자세로 기록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딱 그 두 가지뿐이다.

이전 04화 술이 달면 하루가 인상적이었단 뜻이라던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