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이 내 일이 되는 법
회사 일과 내 일은 다르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회사 일에도 내 일로 분류되는 것이 있었지만, 그건 진짜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야 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 거기에만 온전히 내 일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고 착각하던 때가 있었다.
계속해서 회사를 다닐 거라면 상관이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회사에서의 경험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주위의 어른들은 그것마저도 귀중한 자산이라고 했지만, 당시 가진 게 시간 밖에 없던 나는 나의 유일한 자산을 조금 더 가치가 높은 곳에 쓰고 싶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이야기에 작은 공감을 하게 된 건, 3년 차 이후부터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회사에서 쌓은 모든 경험은 고스란히 나의 자산이 되어 있었다. 명함을 주고받는 법, 업무 통화를 하는 법, 문서를 작성하는 법, 그리고 이메일을 작성하는 법까지. 작은 회사에서는 누구도 따로 알려주지 않지만, 일을 하면서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것들. 그것들이 모두 나의 무기가 되었다.
회사를 다녀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의외의 장소에서 자주 나타났다. 업무와 관련된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 여기서 가장 극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은 적어도 몇 년 동안 회사에서 일을 해 본 사람이구나', '회사에 다니는 동안 적어도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진 않았던 사람이겠구나'라는 걸 첫 메일을 주고받을 때 단번에 알 수 있다.
신기한 일이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은 회사 밖에서 쓸모가 없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회사 안에서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것들이 회사 밖에서는 자주 나의 경쟁력이 되곤 했다.
회사가 내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 될지, 내 일을 위한 베타테스터가 될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렸다. 작은 회사에서 큰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을 때, 내가 사수라고 여기던 분이 나에게 해 준 조언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회사에서 큰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마음껏 해 봐
직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돈을 써서 무언가를 실행할 수 있는 직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회사 돈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해 보는 게 좋다. 돈을 횡령하거나 배임 같은 범죄를 저지르라는 말이 아니다. 이게 내 사업이었다면 정해진 예산을 어떻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능동적인 고민을 해 보라는 뜻이다.
예산의 규모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과 포기해야 하는 일이 있다. 작은 회사에서는 적은 예산으로 최대의 효율을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큰 회사에서는 작은 회사에서 하지 못할 위험한 일들을 벌일 수 있는 이유이다. 작은 회사부터 큰 규모의 회사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이게 돈을 쓸 만한 일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과정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를 나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일을 해 보자라는 마음 가짐만 있다면 회사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내 일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혹시 누가 알까? 내 길이 아니라고 여기던 길이 내 천직일 수 있다. 퇴사를 하고서 내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회사에서 일을 하는 구조에 최적화된 사람일 수도 있는 일이다.
모든 일은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렸단 한 철학자의 말을 기억한다. 삶의 어딘가에 놓일 하나의 점을 보고 달리는 일도 좋지만, 일단 내 앞에 있는 빈자리에 지금의 점을 충실히 그려나가는 일. 인생의 행복은 그곳에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