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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된 자의 노래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 Op. 23, 1835

by jeromeNa

개인적으로 쇼팽의 음악을 좋아한다. 평생 조국의 그리움이 남아서일까. 서정적이면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번 화에서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을 <발라드>를 소개한다.




Seong-Jin Cho - Chopin: Ballade No.1 In G Minor, Op.23 | Yellow Lounge


1836년 파리, 플레옐 홀. 쇼팽이 피아노 앞에 앉는다. 창백한 얼굴, 마른 손가락. 청중석의 숨소리가 멎는다. 그가 건반을 누르자 나지막한 선율이 흐른다. 느리고, 망설이듯,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한 도입부. 그러다 갑자기 폭발한다. g단조의 격류가 홀을 채운다.




리스트는 쇼팽의 연주를 여러 글에서 '폴란드의 정신'과 연결 지어 묘사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영혼을 음악에서 느꼈다고. 무엇이 그로 하여금 낯선 땅의 아픔을 듣게 했을까.


5년 전으로 돌아간다. 1831년 9월 8일, 슈투트가르트. 스무 살의 쇼팽이 카페에서 신문을 펼친다. 바르샤바 함락. 러시아군이 폴란드 수도를 점령했다는 소식. 그의 일기. "교외가 파괴되었고, 빌헬름과 마르셀이 죽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빈손으로 앉아있다니! 때로는 신음하고, 절망하며, 피아노에서 고통을 쏟아낸다."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11월 봉기 실패 후 러시아 제국은 봉기 지도부와 장교, 지식인들에게 처형과 유형, 재산 몰수를 단행했다. 쇼팽은 봉기 직전 폴란드를 떠나 있었지만, 여권 문제와 정치적 의심, 가족의 만류로 귀국이 불가능해졌다. 스물한 살에 조국을 잃었다. 영원히.


Adam_Mickiewicz_wed%C5%82ug_dagerotypu_paryskiego_z_1842_roku.jpg 아담 미츠키에비치, 위키백과


파리에 정착한 쇼팽은 아담 미츠키에비치를 만난다. 폴란드의 국민시인, 역시 망명자. 미츠키에비치의 아파트는 폴란드 망명자들의 사랑방이었다. 매주 목요일 저녁, 그들은 모여 폴란드어로 시를 읽고, 폴란드 음식을 먹고, 폴란드의 독립을 꿈꿨다.


미츠키에비치의 서사시 [콘라드 발렌로드]. 14세기 리투아니아 기사 이야기. 독일 튜튼 기사단에 포로로 잡힌 발렌로드는 겉으로 개종하고 기사단 단장이 된다. 하지만 속으로는 복수를 계획한다. 고의로 잘못된 전략을 세워 기사단을 파멸로 이끈다. 조국을 위한 배신자의 길.


쇼팽의 발라드들은 미츠키에비치의 서사시와 정서적으로 닿아 있다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쇼팽이 특정 작품을 직접 음악화했다고 명시한 기록은 없다. 오히려 그는 음악의 서사를 열어두었다. '발라드'라는 이름을 붙인다. 원래 발라드는 중세 시인들이 부르던 이야기 노래였다. 쇼팽은 피아노 독주곡에 이 이름을 처음 사용한다.





1831년 빈 체류 시절의 스케치에서 시작해 1835년 파리에서 완성. 자필 악보에는 수정의 흔적들이 겹겹이 남아있다. 6/4박자의 느린 도입부 후 갑작스러운 전환. 평화로운 과거와 폭력적 현재의 대비.


제2주제는 E♭장조. 따뜻하고 서정적이다. 많은 연주자와 비평가들이 이 부분에서 '향수'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으르렁거리는 베이스가 깔린다. 불안이 스며든다.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발전부에서 두 주제가 충돌한다. 화성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쇼팽이 자주 활용한 나폴리 6도 화음이 등장한다. 이국적이면서도 슬픈 울림. 폴란드 망명 경험과 결부해 이 화성을 '유랑'과 '불안정함'의 정서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코다(Coda - 이탈리아어로 '꼬리'라는 뜻으로, 곡의 마지막에 붙는 종결부)는 광기다. Presto con fuoco(연주 지시어, Presto = 매우 빠르게 : 템포 지시, con fuoco = 불타듯이, 열정적으로 : 표현 지시), 불타는 듯 빠르게. 양손이 번갈아가며 하강하는 스케일. 마지막 4마디, fff의 옥타브 연타. 파괴인지 승리인지 알 수 없는 종결.


로베르트 슈만이 1836년 《음악신보》에 쓴 평론. "쇼팽의 발라드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야성적이고 독창적이다... 폴란드 시인의 시를 음악으로 옮긴 것 같다." 슈만은 미츠키에비치를 읽지 못했지만 음악에서 서사를 들었다.


클라라 슈만은 일기에 쇼팽 연주의 강렬한 인상을 기록했다. 그 음악이 주는 정서적 무게, 아름다우면서도 고통스러운 그 무언가를.




초연은 정확한 날짜가 없다. 1835년경 파리 살롱에서 처음 연주했다고 추정할 뿐. 출판은 1836년 6월,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헌정은 하노버의 외교관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슈토크하우젠 남작에게. 왜 그에게 헌정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악보 첫 장에는 템포 표시만 있다. Largo(이탈리아어로 '넓게, 폭넓게', 매우 느린 템포, 장중하고 무거운 느낌), 후에 Moderato(이탈리아어로 '보통으로, 적당히', 중간 템포, 걷는 속도와 비슷한 자연스러운 템포). 다이내믹이나 표정 지시는 최소한. 쇼팽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하듯 연주하라. 하지만 무슨 이야기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빌헬름 폰 렌츠의 회고록, 1872)


1849년 10월, 쇼팽의 마지막 날들. 제자들이 그의 곡을 연주했다는 증언들이 남아있다. 임종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지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음악이 남았을 뿐이다.


지금도 이 발라드는 연주된다. 9-10분의 시간 동안, 피아니스트는 쇼팽이 걸었던 길을 따라간다. 상실과 분노, 회상과 절망, 그리고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질문.


조국 없는 자의 노래.


돌아갈 수 없는 자의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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