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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omeNa Sep 15. 2020

자가 격리되던 날

천만다행이다.

아침에 눈을 떴지만 쉽게 일어나질 못했다. 잠이 아직 내 몸에 스며들어 나가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 헬스장에 가서 열의에 차서 체력의 한계가 올 정도로 오버한 후 다음날 일어났을 때 사지가 뒤틀린 듯한 고통이 관절마다 느껴졌다.


기름칠하지 않은 기계가 움직이 듯 삐걱대며 일어났다. 손이 점점 따뜻 해지다 못해 뜨거워지고 있었다. 온도계를 찾아서 열을 체크해봐야 하지만, 배에서 천둥번개를 동반한 묵직함이 오고 있었다. 급히 화장실로 직행해야 했다. 세찬 소나기가 아닌 폭포수가 쏟아졌다.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느낌이다.


힘겹게 화장실에 나와 온도계를 찾았다. 36.8도 정상이다. 정상 체온인데도 손은 계란 프라이를 해도 익을 듯이 오르고 있었다. 다시 체온을 쟀다. 37.1도 이것도 정상이다. 체온을 잴 때마다 0.1도씩 올라갔다. 5번을 재고 나서 최종 37.4도가 나왔다. 미열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열을 다 재고 나서 배에서 또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바로 병원을 갈까 고민했지만, 먼저 보건소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중교통을 탈 수는 없었다. 구청까지 거리는 2Km 남짓. 걸어서 2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다. 지금의 몸상태로는 2km도 20km 같은 거리다. 해열제를 먹고 싶었지만, 먹지 않고 삐걱대는 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창하고 선선한 가을볕은 여름 볕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걸은 한걸음 옮길 때마다 땀이 올라왔다. 힘겹게 구청까지 도착해서 선별 진료소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대기자가 12, 3명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곳에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대기하면서 회사와 주변 사람들에게 일단 검사를 받는다는 연락을 취했다.


회사는 비상이 걸렸고, 나랑 밀접한 사람들은 조기 퇴근을 했다. 조기 퇴근한 사람에게서는 '고맙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회사는 내 결과를 예의 주시했다. 가족은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내 차례가 되어 상담소로 갔다. 열을 체크하니 그새 0.4도가 올라 37.7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하고 검사소로 들어갔다. 유리벽으로 차단되어 손만 나와있는 검사소였다. 검시관은 내 앞에 있는 포장지를 뜯어 2개의 검시 막대를 꺼냈다. 하나를 집어 '아~'하면서 입을 벌리라고 했다. 막대가 입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목젖을 지나 목구멍까지 헤집고 들어왔다. 순간 오바이트를 하는 줄 알았다. 1차 검사가 끝나고 다른 막대를 집어 왼쪽 코에 들이밀기 시작했다. 코 안쪽 후비공을 지나 편도선을 따라 연구개까지 쑥 들어왔다. 아프다거나 따끔거린다거나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바닷물이 코로 들어와 빠지지 않고 계속 자극하는 느낌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집까지 걸어 돌아왔다. 검사 결과는 저녁때 문자로 온다고 와이프에게 말하고 회사나 지인들에게 통보했다. 아이들은 2.5단계가 풀려 오늘부터 학원에 가야 하는 날이었지만, 자가격리를 해야 해서 집 밖에는 못 나간다는 말에 쾌재를 불렀다. 내가 아픔으로서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다.


해열제를 먹고 오후 내내 자기만 했다. 와이프는 하루 격리되고도 답답하다고 볼맨 소리를 냈다. 결과는 6시 조금 지나서 나왔다. '음성'이었다. 다시 확인해봐도 음성이었다. 모두한테 결과를 알려줬다. 모두가 다행이라고 한숨을 돌렸다고 했다. 와이프는 저녁을 먹고 바로 산책을 나갔다. 나의 아픔은 코로나에 이미 밀려 내가 아프던 말던 상관없는 것 같았다.




다음날 병원을 찾았다. 장염이 의심된다는 답변이 왔다. 뭘 잘못 먹었는지는 몰라도, 장염으로 인해 하루 동안 한바탕 소동으로 무료하고 답답한 일상에 이벤트가 생긴 듯하다. 장염 자체도 힘든 병인데, 코로나로 인해 반감된 듯하다. 힘들 것 같다라고 아무도 걱정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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