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삼키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

by 열혈정신과

자녀의 마음을 읽어주어야 한다는 말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고도 한다. 아이의 마음을 다 받아주다 보면 버릇이 나빠질 것 같고, 부모가 먼저 지쳐버릴 것 같다는 걱정도 따라온다. 그러나 이런 반응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읽어준다는 말이, 자녀의 모든 요구를 거절 없이 수용하라는 뜻으로 오해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마음 읽기는 ‘다 해주기’가 아니다. 그것은 행동을 허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문제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 인간은 감정을 혼자서만 조절하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원래 감정을 외부에서 같이 조절하도록 진화한 존재다. 아이에게 부모는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라, 감정을 함께 처리해주는 외부 장치다. 아이의 말로 정리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 징징거림과 투정, 이유 없는 울음까지도 잠시 맡아두었다가 조금 정돈된 형태로 다시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마음을 읽어주는 말은 아이를 버릇없게 만드는 말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사람이 다룰 수 있는 크기로 줄여주는 말이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아이를 압도하지 않을 정도로 정리된다.


“네가 말하는 걸 듣고 있으니까 엄마가 더 힘들어. 이제 그만 말해.”

이 말은 생각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남긴다. 이 말은 아이의 언어로 번역되면 이렇게 들린다.


"네 감정은 부담스럽다. 네 마음은 혼자 처리해야 한다."

이 신호를 반복해서 받은 아이들은 결국 그 신호에 맞게 적응해야하기 때문에 더 이상 부모에게 솔직한 마음을 말하지 않게 된다. 누구나 자신의 진짜 마음이 거절당하는 경험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거절은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대보는 것처럼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나게 만든다. 오래 남는 상처가 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 자신의 감정을 말로 정리해볼 기회를 점점 잃어버린다. 감정이 생겨도 그것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밀어 넣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대개 게임, 넷플릭스, 쇼핑 같은 것들이다. 즐거움을 주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깊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되게 도와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느끼지 않으면 괴롭지 않으니까, 생각하지 않으면 복잡해지지 않으니까.


‘혼자 감정 조절을 잘하는 아이’는 종종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성숙함이라기보다 단절에 가깝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아이는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가 아니라, 감정을 다룰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아이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자라서도 자신의 감정을 말로 잘 풀지 못한다. "부모님과 특별히 다투는 것은 없어요. 그렇지만 힘든 일을 상의할만한 사이는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젊은 성인들도 많다.


마음을 읽어준다는 것의 진짜 목적은 아이를 편하게 해주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이다. 충분히 담아지고, 충분히 정리된 감정을 경험해본 아이만이 언젠가는 혼자서도 자신의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네가 사 달라는 것, 네가 해 달라는 것, 다 해줬잖아. 그런데 왜 너는 부모에게 감사할지 몰라? 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있겠지만. 그건 아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종류의 돌봄은 아니다. 모든 것을 다 주더라도 아이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마음을 알아주는 느낌, 부모에게는 부담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면, 아이가 느끼는 것은 감사가 아니라, 거리감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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