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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Aug 14. 2020

중년을 마주하다

베란다에서 잠시의 일탈


답답함에 서글픔을 더해 헛헛한 기운마저 느낀 것은

그때부터인 것 같다.

아내와의 소소하고 심각한 다툼 후, 가족들이 자는 동안

홀로 나와 베란다에 몸을 숨겨

막걸리를 마실 때였다.

홀로 숨어 있다는 표현이 맞았다.

내가 발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었으니, 그건 필시 숨어있는 거였다.

신문하고 플라스틱 병 같은 재활용 용품들 옆에 있는 작은 공간이

그렇게 편했고, 베란다 밖 다른 집 풍경과 밤거리는 이상하게 고요할 만큼 평온했다.

가로등에 비친 나뭇잎들의 초록색 불빛이 굴절되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때인 것 같다.

이 집에서 내가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여기밖에 없다고 느꼈던 것이

그게 이 답답함이 서글픔과 마주한 시간과 공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살지만 홀로 있는 기분

그 좁지 않은 집에서, 유일하게 그 비좁은 공간에서만 이상한 평온함을 느낀 그때

나는 철저히 자유로웠고, 동시에 슬퍼졌다.


그때 떠오른 영화의 한 장면. <#웨이크필드>

잘 나가던 변호사 하워드 웨이크필드.

어느 날 불연 듯. 어쩌다 보니 다락방에 갇히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다락방에서 지내면서 가족들을 관찰하는 그의 일탈이 시작된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 더 조금 더를 반복하며

그는 수개월 동안 일상을 로그아웃한 채 다락방에서 생활한다.


씁쓸한 자유로움, 제한된 일탈

내가 베란다에서 마치 웨이크 필드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긴 들숨과 날숨이 몇 차례 반복되는 동안, 막걸리병은 이내 그 밑바닥의 침전물을 찰랑거렸다.

내 안의 남은 우울의 부유물이 마지막으로 풍장 하듯 떠다닌다


어느덧 나의 몸은 무의식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내 나는 자리를 정리한다

가끔 불편하여 짓누르지만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로 허정거리며 주섬주섬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베란다 문을 통해 한 발자국 들어와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게 갑자기 놀라워진다.


언젠가 다시 삶이 버거워질 때면 나는 그 비좁은 공간을 찾아 다시 앉게 될 것이다.

행복과 불행, 안락함과 불편함, 제 곳과 아닌 곳, 갑갑함과 청량함 들의 상반된 단어들과 조합

이 단어들은

서로서로에게 곁을 주면 연결되어 반복적으로 순환하며 돌아갈 수 있게 되어있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불행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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