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오니 20년도 넘은 친구와 자주 볼 수 있어 좋다. 작년에 결혼한 친구의 신혼집이 용인에 있어서 가깝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천에 살면서 자주 붙어 지낸 사이였다. 멀리서 잘 지내는지, 타지에서 결혼생활은 외롭진 않은지 괜스레 걱정했다. 아마 그 친구의 성격상 힘들어도 말을 안 하는 탓이다.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고.
차가 없는 나 대신 친구가 수원에 자주 와주었다. 지난번엔 축구 경기를 보았고, 맛집도 갔다(사실 수원에 맛집은 그다지 없다. 수원통닭거리에 있는 왕갈비통닭 정도려나. 지나가는 여행객이 수원은 만두지! 하는 건 들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수원 스타필드도 놀러 갔다. 돌아다니는 것 귀찮아하는 우리 취향에 딱 맞게 모든 게 하나에 다 있는 곳.
심지어 위에 쇼핑을 하고, 밑에 있는 이마트에서 장도 실컷 봤다. 나는 1인가구로서, 그 친구는 2인 가구로 신랑의 먹거리를 함께 생각하며 장을 보았다. 이렇게 다 커서 장을 보고 있고, 신랑도 챙기고 있다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특히 신랑을 생각해서 이것저것 사고, 먹을 것도 사들고 가는 친구의 모습은 생소하기 이를 데 없었달까. 이 말을 하니 친구는 엄청 웃으며 좋아했다. 자신의 변화가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장을 보다 보니 이것저것 담아둔 맛있어 보이는 샐러드가 보였다. 평소 운동도 겨우 하는 인생이라 샐러드나 닭가슴살 같은 것들은 항상 장보기에서 열외였다. 샐러드를 먹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카레만 주야장천 먹고, 라면도 엄청 먹어댔다. 원래 라면은 좋아하는 1순위 음식이기도 하고, 카레는 점심에 식당에 가서 줄 서는 것조차 귀찮아서 대충 싸들고 다녔다. 야채를 너무 안 먹었지 싶어서, 억지로라도 샐러드를 세트로 사두었다.
집으로 와서 샐러드를 꺼내먹는데, 너무 맛있었다. 소스는 오리엔탈 소스였는데, 이 마저도 평소 잘 안 먹는 나에게는 생소해서 찾아보기까지 했다. 정말 관심 있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일을 많이 해보지 않았구나.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이렇게 관심이 없고, 모른다는 이유로 안 먹어본 음식 중엔 얼마나 맛있는 것들이 많을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매일이 비슷해서이고, 다른 일이 없이 그냥 지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이가 먹으면서 오히려 익숙한 것을 찾게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자꾸 도전해봐야겠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복지관에 다닐 때, 70-80대 어르신들조차 새로운 것에 자꾸 도전하시는 분들이 더 젊게 사시고, 더 즐거워 보이셨다. 새로운 것을 자꾸 배워야지, 귀찮다고 안 하시는 분들은 결국 혼자서 문자 보내는 일도, 카페에 가서 키오스크를 누르는 일도 귀찮아서 안 해버리시니까.
웃기게도 샐러드에 꽂혀서 갑자기 샐러드만 먹었다. 단호박 샐러드, 야채, 소스 등 샐러드 하나를 먹기 위해 또 장을 보았다. 그러다가 또 맛있는 걸 도전해야지 하고 얼마 전엔 그릭요거트도 사 먹어보았다. 진짜 나는 여태껏 뭘 먹고살았던 걸까? 이런 기본적인 것들의 맛도 모르고 살았다니. 앞으로 장을 볼 땐 먹어보지 않은 음식 한 가지 이상은 꼭 사봐야지.
음식 말고도 안 해본 일들에 대해서 자꾸 해봐야지. 그럼 이 기나긴 인생이 조금 덜 지루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