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날부터 위가 너무 아팠다.
콕콕 찌르는 고통은 이직하고 나서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였을지, 그만두기 전까지 일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였는지. 첫날은 사무실과 다른 교육장으로 가야 해서 급하게 차를 빌렸다.
차가 있으니 출근 전까지 병원에 갈 여유가 있었다. 차를 세우고 지도 앱을 켜서 일찍 문을 여는 병원이 있는지 보았다. 다행히 8시 30분부터 문을 여는 곳이 있어서 아픈 배를 부여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제일의원. 이름도 제일의원인 데다가, 제일의원이 위치한 건물은 낡고 오래돼 보이는 구옥이었다. 불이 꺼져있어서 운영하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문부터 열어보았다.
문이 열리는 것이 이상할 만큼 어두컴컴했지만, 안에는 간호사나 의사도 아닌 할머님 한 분이 앉아계셨다.
병원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옥색 소파, 불도 켜지지 않아 어두컴컴한 접수대, 세월을 짐작게 하는 낡은 물건들이 곳곳에 보였다.
소파에 홀로 앉아계신 할머님은 마치 아는 사이처럼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셨다. 알고 보니 건물 2층에 살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바깥에서 기다릴 어르신들을 생각해서 문을 열고 다시 올라가신 거랬다.
할머님은 몸이 아프니 병원에 오는 게 일이라며, 일찍 와서 기다리고 계신 거랬다. 할머님은 심심하던 차에 잘 만났다는 듯이 본인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셨다.
본인이 허리가 너무 안 좋아서, 작년에 수술도 하셨으며,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셨다. 매일 먹는 건 약이고, 집에서 티브이만 보면서 낙 없이 지낸다고도 하셨다.
외로우시겠다 싶었는데, 이야기를 점점 나누다 보니 삼식이 남편도 있고, 자식들이 자연스럽게 맡기는 손주들도 계셨다. 그래도 자신과 취미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없으시니 외로운 건 매한가지였다.
할머님은 허리도 제대로 못 가누시면서 여태껏 남편 밥, 손주 밥까지 차려야 하시다니. 참 엄마의 삶은 애달프구나 싶었다.
할머님이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할머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만 물어보셨다. 오히려 내가 물어보지도 않을 이야기들을 꺼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첫 출근을 앞두고 긴장되던 나도 뭔가 아무 말이나 하고 싶었던 건지도.
불이 꺼진 진료실에서 처음 본 할머님과 나눈 대화치고는 꽤 정감 있었던 모양이다. 병원 문을 열 시간이 되자 등장한 간호사 한 분이 오시자마자 무언가를 급히 챙겨 다시 나가셨다. 그걸 본 할머님은 ‘옆집 강아지 챙겨주려 그래. 옆집 강아지가 빠짝 말라서. 간호사들이 저렇게 챙겨줘.’ 그러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또 속삭이셨다. ‘좋은 거 줘 고기. 이런 거. 강아지가 아주 얼굴이 뽀얗게 됐어.’
의사 선생님은 어르신들이 기다릴까 봐 일찍 문을 열어주시고, 간호사분들은 옆집 강아지가 걱정되어 고기를 챙겨주시는구나. 참 따뜻한 곳이구나 싶었다.
그리곤 하나둘 어르신들이 병원에 모이기 시작했다. 간호사분도 한 분 더 오시니 북적북적 병원 분위기가 났다. 모두가 기다리던 의사 선생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핸드폰을 잃어버리신 것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주신 다음에야, 핸드폰을 찾은 의사 선생님이 2층 계단에서 내려오셨다.
머리가 하얗고, 정말 70세는 넘어 보이시는 분이셨는데, 왼손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을 들고 내려오셨다. 연세가 많이 드셨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굉장한 미남이셨겠구나 싶었다. 젊었을 적 이 동네에 똑똑하고 잘생긴 의원이라니. 인기 무진장 많으셨겠구나. 부러운 삶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오시자마자, 일 번으로 기다리던 할머님은 출근해야 하니 먼저 진료를 보라고 양보해 주셨다. 아직 시간 있으니,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했다. 웃긴 건 할머님은 진료 대신 물리치료만 받으러 오셔서 다른 방으로 가시긴 했지만, 마음만은 감사했다.
의사 선생님과 독대하는 건 왜 항상 긴장될까.
의사 선생님에게 위가 아프다고 하자, 몇 번 청진기를 대보시더니 ‘아침 안 먹지?’ 하셨다. 안 그래도 요새 공복 12시간 유지해 보겠다고 아침을 안 먹던 차였다. 그게 일주일도 안 되었건만. 스트레스도 겹치고, 위도 비어 있겠다 잘도 위염이 걸린 것이었다. 빈속에 커피 마시지 말고, 빵이라도 꼭 챙겨 먹으라고 하시곤 주사도 맞고 가라고 하셨다.
주사 한 방을 맞고, 병원문을 나서는데 제일의원은 정말 제일의원이구나 싶었다. 그냥 공장 돌아가듯 돌아가는 차고 흰 배경의 병원이 아니라, 따뜻하고 정겨운 사람 내음 나는 병원 같달까.
병원을 나와 약을 타러 약국에 갔는데, 약국엔 들어가자마자 올드팝송이 흘러나왔다. 약사 선생님의 올드팝 송 감성이 참 멋졌다. 정말 여긴 아직 현대사회에 찌들지 않은 곳 같았달까. 약을 타고, 하나 꺼내서 먹으려는데 자연스럽게 쌍화탕 하나를 건네주셨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약국을 나왔다.
차로 돌아와서 혼자 약봉지를 입어 털어놓고, 온기 가득한 쌍화탕을 마셨다. 아픈 위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기분이었다. 생각지 못한 따뜻한 마음들을 느낀 아침이었다. 긴장되던 출근길도 한결 가벼운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