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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Nov 10. 2022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재방문하고 나서


신구도서관재단에서 발행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더 라이브러리 11월호에 「공공성의 역설 -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이란 제목의 짧은 글을 실었다. 처음에《더 라이브러리》측은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2017년 작 <뉴욕 라이브러리에서(Ex Libris: New York Public Library)>를 통해 (《더 라이브러리》 측의 말을 빌리자면) "책을 비치하는 곳을 넘어 생명력 있는 장소가 된 공공도서관의 모습을" 묘사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나는 도서관의 공공성이 지닌 복잡한 맥락에 대한 간략한 탐구로 이 요청을 치환해보았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와이즈먼의 작업일 텐데, 안타깝게도 그런만큼 치욕스러울 정도로 진부한 견해들에 단단히 묶여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무한한 '오픈 스페이스'로서의 도서관'? 하지만 그 "'오픈'"이란 상태는 대체 어떻게 가능하며 나아가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이 글은 이런 스스로의 물음을 해소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아래는 글의 링크다.






"돌이켜보면 픽션 속에서 도서관이 책을 읽기 위한 공간으로만 묘사된 적은 아주 드문 것 같다. 물론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픽션이란 우리의 삶의 감각에 ‘조작’을 가하는 것이므로, 어떤 공간의 상투적인 역할이 픽션에서 자세히 재현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의 경우는 그 정도가 유별나게 심한 것 같은데, 픽션 속 도서관이란 평범하게는 인물들이 큰 소리로 떠들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받는 곳이고, 때로는 어떤 사건의 단서가 숨겨진 공간이며, 로맨틱 혹은 섹슈얼한 긴장이 조용하게 감도는 곳이거나 아니면 아예 그 자체로 역동하는 하나의 세계로 우리에게 제시되곤 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도서관은 광의의 교육기관으로 기능해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마음껏 읽고 소장할 수 없다는 잔인한 사실에 맞서,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비롯한 기록매체들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접할 수 있도록 한 도서관은 그 근본에 있어 대안적 교육기관의 성질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의 탄생 - 문명의 기록과 인간의 역사』라는 책을 따르자면) 지난 1세기 동안의 공공 도서관의 발전은 도서관의 이런 “대안적” 성질이 만개해 공공성과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도서관의 역사란 곧 대안적 교육기관의 성질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변이한 궤적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하나 (영화 안에서도 몇 차례 언급되고 보여지는 것처럼)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더 많은 책과 책걸상을 구비하는 것만으로는 이상적인 공공성을 추구할 수 없다. 고도로 디지털화된 사회, ‘시민’ 범주의 확장. 이런 정세 속에서 도서관은 무엇을 해야 할까? 또 그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위상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도서관은 공공성의 역설, 정확히는 공공성이라는 낱말의 복합성이라는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공공성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도서관은 교육의 장소면서 교육의 장소가 아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기묘한 서술을 한 번 풀어보자. 공공성은 ‘교양’과 ‘불순’의 의미, 그리고 ‘이념’과 ‘행정’의 성질을 한 몸에 품고 있다. 즉 이 낱말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교양’을 제공하고 또 요구하는 일을 의미하는 한편 ‘불순’에 가까운 이들도 엄연한 시민으로 충분히 포괄하는 일을 의미할 수 있고, 또한 추구해야 할 ‘이념’이면서 동시에 수행되는 ‘행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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