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 안녕

빛과 달과 아이와 현재와 미래

by 열무샘

아들 친구 녀석이 아빠가 된 지 일 년이 되는 날이다. 아들은 결혼도 덜컥하더니, 아이도 덜컥 생겼다며 성질을 냈었다. 아무 생각 없다고, 현실 감각이 없다며 속상해했다. 스물네 살에 아빠가 되었으니, 군인 하사관이라 언제 그만둘지도 모르면서, 아들이 친구 걱정을 할 만하다. 나도 걱정이 안 된 건 아니다. 아들의 친구들을 떠올리면 짠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았던 녀석도 있다. 내가 시킨 힘든 일을 하고 "소고기 구워줄게"라는 말에 좋아서 웃던 아이, 부모님과 싸우고 우리 집 옥탑 창고에 숨어 있던 아이, 공부도 별로고, 집안 사정은 이런저런 이유로 복잡하고, 부유하지 않은 아이들이다. 공동육아를 하는, 방과 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깨시민 자녀는 없다. 대안학교 대안 교육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다. 아들의 실연을 달래준다며 우리 집에서 하루 종일 술을 마시기도 했고, 그 애 그 아이들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밤새 놀고 싶다며 나를 찜질방에서 보내기도 했던 아이들이다.

어쩌다가 아들 고등학교 앞에서, 녀석들을 만났다. 저녁을 사달라고 해서 동태탕 집에 갔다.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동태탕을 사주려니 비용이 꽤 많이 들었다. 그중 한 녀석이 알이 든 특 동태탕을 시키겠다고 했다.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너는 눈치도 없냐고. 그 눈치 없는 녀석이 바로 오늘 아이 돌잔치를 준비하는 아빠가 되었다.


잘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고, 지들끼리 시끄럽고, 평범하고, 그럼에도 모두 다른 모습이라, 아들처럼 까칠하고 현실적인 어른으로 자란 아이도 있고, 스물네 살에 덜컥 아빠가 된 녀석도 있고. 녀석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그저 놀고 싶다면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특 내장탕을 시켜도 미워하지 않는 어른 말고는 해 줄 게 없었다.


오늘 돌을 맞이한 아기를 위해서 책을 보냈다. 달님 안녕과 몇 권의 책이다. 달님 안녕, 아. 이 책은 너무 좋다. 달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는다. 인상을 많이 써거 미간에 주름이 생긴 내 심각한 얼굴도 웃게 만드는 책이다. 그럴 때가 있었다.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아들이 오늘의 아기만 할 때, 달님 안녕을 보면서 까르르 웃던 시절, 그때 그 시절과 그 시절이 연장이 되던 다섯 살 무렵까지 아이는 하늘의 달을 쳐다보는 아이였다. 내 등에 업혀서, 엄마 달은 왜 생겼어, 달은 왜 변해, 달은 뭐야 라고 끊임없이 물어보던 아이였다. 그때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고, 달님 안녕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깔마, 진짜 달이 빛이 안나."

"응. 달은 해의 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거야. 우리가 전등 빛을 받는 거라 같지."

10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망한 눈치다. 아이의 마음이 충분히 전달된다. 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른이 나도 가끔 달을 쳐다보며 멍하니 위로를 받는데. 어쩔 수 없다. 이제 아이는 달이 빛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태양의 빛에 기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전등 빛을 받으면 네가 보이잖아. 밝게. 그걸로도 기분이 엄청 좋잖아."

아이가 고개를 또 끄덕이다. 아이들은 참 신기하다. 말을 하는 내가 감정을 실어서 엄청 좋잖아, 진짜 그렇지 않니 하면, 정말 그렇다는 답을 온 얼굴에 보여준다.

다시 생각한다. 태양에 기대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는 달님이지만, 그게 뭐 어때서 싶다. 스스로 빛을 내건, 그 빛에 기대건, 밝게 환하면 되는 거 아닐까? 저 그림책 속의 달님처럼 하고.


아들도, 아들 친구들도, 그 친구의 아기도, 누군가가 우러러 볼 삶을 살 것 같지는 않다. 방과후의 아이들, 모든 아이들이 빛나는 성취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현실의 제약으로 힘들게 더 힘들게 살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그 하나하나의 삶이 반짝이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달을 떠올리고, 달님 안녕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나는 어제의 아들과 아들의 친구에게 동태탕을 사주었듯이, 오늘 아들의 아기에게 책을 선물하고, 또 방과후에서 아이들을 만나야지.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그때, 그 시각에 충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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