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의 색

제비꽃색, 오렌지색, 인디고 색

by 열무샘

“뉴턴이 살던 시대의 기본 색은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제비꽃색의 다섯 가지 색이었으므로 두 가지 색을 보태서 일곱 색으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빨간색과 노란색 사이에 당시 일반적인 과일이었던 오렌지 색깔을, 파랑과 제비꽃색 사기에는 인도에서 수입되었던 식물 염료인 인디고의 색깔을 새로운 색으로 골라 넣었다.” - <빛과 색의 신비>에서


우리가 무지개를 무지개로 인지하고 다음부터 무지개의 색은 일곱 가지로 느껴진다. 아니다. 실제로 무지개를 마주하면 무지개의 색이 일곱 가지인지, 여섯 가지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세어 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무지개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감탄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내가 무지개의 색이 일곱 가지라고 인식할 때는 내 앞에 진짜 무지개가 없을 때이다. 내 관념 속의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을 지니고 있고, 지녀야 한다.


실제로 무지개의 색은 셀 수 없다. 빛은 모든 색을 품었다. 아니 빛은 빛 그 자체다. 색은 빛의 어떤 특정 부분을 호명하는 이름일 뿐이다. 색은 빛의 어느 부분과 어느 부분에 경계를 두고, 그 경계 사이를 바라볼 때 생겨

난 이름이다.


경계.

아이들의 어떤 행동, 어떤 말, 어떤 양상에 언어와 이름을 붙이는 일은 당연하다. 그냥 그대로, 있는 그대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관계와 공동체와 사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윤리와 기준과 룰과 법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 이름 붙이는 일의 어려움이겠지? 어떤 부분과 어떤 부분까지에 선을 긋고, 그 선 사이의 어떤 행동과 말과 양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에 따라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다. 어렵다. 내 판단이 맞는 것일까? 혹은 지금 내 판단이 틀렸다 하더라도 회복은 가능할 것인가?


보라색을 제비꽃 색으로, 주황색을 오렌지 색으로, 남색을 인디고 색으로 부르고 나니 뭔가 달라진 기분이다. 보라, 주황, 남색의 균일함, 흠결 없음에 숨이 막힌다면, 제비꽃과 오렌지와 인디고는 그 경계 안에서 서로 다르고 이질적이라 편안하고 자유롭다.


가끔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을 알기 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불가능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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