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서 배운 것들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들과는 사뭇 다른 온도를 가질 때,
내가 걸어온 길이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 때,
오늘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있을 때,
시간을 되돌린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시간을 되돌려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는 답을 들었을 때,
외모로 누군가를 판단해버린 내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 질 때,
맛있는 냄새가 나는 레스토랑 앞에서 오랫동안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 거릴 때,
커피 한잔을 시켜두고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만약'이라는 상상을 할 때,
이른 아침 눈 앞으로 쏟아지는 골목길의 햇살을 보며 코 끝이 뜨거워질 때,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며 공항으로 향하던 길에 문득 내가 짊어지고갈 삶의 무게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올 때,
가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내려고 애써 다음을 기약할 때,
나이 든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뒷모습을 보며 아름답다고 작게 소리내어 말할 때,
카메라 앵글에 차마 담기지 않는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기 위해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할 때,
공항의 분주한 전광판 위로 쏟아지는 목적지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음 여행지가 될 곳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나는 그럴 때마다 나의 여행이 그리고 또 나의 삶이 얼마나 풍부해져 가는 지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여기서는 마음껏 뜨거워져도 된다고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와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해방감에 휩싸여 나는 마음이 원하는 일들을 했다. 발이 닿는 곳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리 적지도 않았다.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마음 속에 차곡차곡 담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 쌓아온 기억들이 모여 훗날 살아가는 위로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 것이 결국 쉽게 흩어지는 것이 아님을 이미 깨닫고 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