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지지 않은 열린 결말
Unknown이라는 단어, 그리고 Untitled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몇 조각의 단어들로 정해지는 운명이 아닌, 열린 주제와 결말에 대해 나는 오묘한 쾌감을 느끼면서도 조금의 책임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서 그들을 대하곤 했었다. 그와 동시에 나 역시도 'Unknow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길 오랫동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 가능성을 채 재단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서 말이다.
언젠가 영어 선생님을 하며 한국에 머물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진해의 군항제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서로의 인생이 흘러온 이야기가 시작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건 '청춘'이라는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채 다듬어지지 않은 그 거친 열정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면서 그만큼이나 '청춘'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을 나는 그 전으로도 후로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친구와 고민하던 중 무작정 떠나보자는 결론을 얻었고 그들은 침대 위에서 운명의 수레바퀴를 움직이게 될 일을 마침내 저지르고 말았다. 방 한 켠에서 그의 성장과정을 함께 지켜본 지구본이 그들의 사이에 놓이자 마치 세계는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지구본을 빙그르르 돌려 손가락으로 찍은 망망대해에는 육안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구글 지도는 그 곳에 아주 작은 섬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 둘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섬의 일원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보내는 일. 그렇게 편지를 보낸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져 갈 즈음에 마침내 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이 되어달라는 회신을 받고서 그와 친구는 작은 섬 마을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오후가 되면 그들은 아이들과 함께 학교 옆 해변에서 가지고 있는 물건들로 크고 작은 놀이를 시작했다. 배낭 속에 들어있던 프링글스 한 통과 몇 가지의 문구류로 아이들과 함께 작은 로켓을 만들고 모래성을 쌓으며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들을 마주할 수 있는 곳에서 너는 무척이나 행복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본인의 행복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의 행복을 나눠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또 다른 여정을 위해 여비를 모으며 잠시 머물게 된 한국에서 너와 내가 만났던 그 짧은 순간도, 우리가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시간들도 나에게는 엄청난 깨달음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나는 얼마 전 읽어내려간 책을 통해 다시금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책 한권, 사진 한장, 지구본 하나. 그렇게 우리는 아주 작은 순간이 운명을 뒤바꾸는 'Unknown'의 상황을 몇 번이고 마주한다. 많은 것들에 마음을 열고 살아야 하는 건 우리에게 찾아올 이름 지어지지 않은 상황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그 것이 나와 당신의 인생에 어떤 이정표가 되어줄 것인지 우리는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