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44. 나의 보물상자

훗날 더 애틋해지는 것들이 담깁니다.

by Jessie
IMG_7937.JPG


시골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무엇이라도 그리웠던 사람처럼 보물상자를 열어 지난 추억들을 꺼내본다. 내가 풍족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추억이었다. 10년이 훌쩍 넘은 편지와 이젠 노랗게 바래 글씨조차 희미해져 버린 그 시절의 편지를 읽다보면 나는 잠시 시간 여행자가 되어 잊고 지낸 기억 속으로 역행하는 기분에 빠져 들었다. 문득 내 손이 멈춘 곳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엄마가 있고 엄마의 시선 끝에는 엄마 나이를 앞두고 있는 내가 있다. 그 시절의 엄마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다보면 지금의 내가 얼마나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지고 그 생각이 조금 더 깊어지면 나는 문득 울컥하는 감정에 사로 잡히고 만다.



어른이라는 존재가 되자마자 떠나왔던 내 공간에 10년이 지나서야 편하게 누워 잠을 잔다. 주인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지만 내 방이 만들어내는 포근한 냄새는 한참동안이나 내가 그리워하던 무엇이었다. 엄마는 오랜 나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내 방 침대 커버를 계절마다 바꾸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내 사진을 붙여두고 가끔 돌아오지 않는 내가 야속하기도, 밉기도 또 그립기도 했을 것이라고, 노랗게 바래져가는 사진 귀퉁이를 보며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늦은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는 내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뭐해?"라고 물음을 던지며 방으로 들어선 엄마와 침대에 기대어 우리의 지난 발자취들을 하나씩 짚어가다가 가느다랗게 떨리는 엄마의 울음을 발견했다. 엄마는 갑작스럽게 지나버린 세월이 야속한 것인지, 눈 깜짝할 새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가 슬픈 것인지 결국 아무런 말도 잇지 않았다. 엄마가 애써 삼키는 감정들이 다치지 않게 나는 가벼운 농담으로 엄마를 위로한다. 영원히 아이일 것 같은 나도 엄마가 애써삼키려는 울음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엄마가 잠자리에 들고 나는 다시 보물상자를 꺼낸다. 엄마가 채 뱉어내지 못한 울음은 결국 내가 고스란히 안고가야 할 슬픔이라고, 슬픔도 유전이 된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보물상자에 담겨있는 것들은 그대로인데 그들을 열 때마다 크고 작은 감정들이 더해져 해마다 그 무게가 더해가고 있다.



지난 달엔 엄마의 울음이 상자 가득 담겼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Scene43. Unkn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