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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Feb 07. 2019

위로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

신대방에서부터 이어지는 풍경들


 서울 생활은 2년이 다 되어 가도록 적응은 커녕 더 어려워지는 듯 했다.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며 바라본 반대편 건널목에는 표정없는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며 서있었고 지하철 안이나 도로 위 심지어 회사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목적지를 잃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밝게 눈인사를 건내는 호주의 풍경과 너무나도 다른 이 곳은 그야말로 차가운 회색의 도시였다. 하루하루 달력을 채워갈수록 스스로가 이 도시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과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가 썰물처럼 사라지곤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삶의 우울은 나를 집어삼킬 듯 했다가 이내 온 몸으로 흩어져 스며 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시름시름 앓아 누워 열병이나 감기 같은 것으로 그 마음들을 삭히곤 했다. 친구도 연애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 곳은 서울이었다. 










 몸이 나아질 때 즈음엔 하루를 잘 견딘 보상으로 노트북을 들고 합정으로 향했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지하철을 타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대방 역에서부터 이어지는 바깥 풍경들 때문이었다. 지하철 차창 밖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빼곡한 회색 빛의 건물로 가득했다. 초록이라곤 길거리에 무심하게 심어진 가로수들 뿐이었지만 그 회색의 프레임 속에서도 누군가는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마저 하나의 풍경이 되고 마는 일이 삶에 대한 뜨거운 연민을 가지게 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흘리고 간 희망의 조각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문가에 서서 오래도록 창 밖을 내려다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창 밖의 회색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당산에서부터 합정역으로 이르는 길목에는 뜻밖의 풍경을 만나게 된다. 햇살을 받아 따스하게 반짝이는 한강에서부터 해질녘 그리움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그리고 반짝이는 외로움들이 모여 만들어진 서울의 야경까지 한강은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머금고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나는 그 풍경 하나를 위해 연고도 없는 합정까지 가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내 서울 살이의 몇 안되는 작은 기쁨이었노라고 여전히 말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그 곳이 나에게 주는 위로의 온도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식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 위로의 풍경은 신대방역에서부터 시작된다. 서민들의 역사가 고이 내려앉은 신대방역은 지하철 역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관악구와 영등포구가 나뉘는 기점과도 같은 곳이었다. 마치 물과 기름이 뿌연 경계를 사이에 두고 선연히 나뉘는 것처럼 말이다. 나란히 자리한 파란 포장마차 사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하나 넘으면 영등포구의 시작점에 우리가 자주 가던 단골 포장마차가 있었다. "신대방역 거기에서 보자"라는 말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장소 말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나란히 운영하던 그 작은 실내 포장마차로 향하던 일을 나는 자주 위로라고 불렀다. 그곳은 주머니에 있는 만원 한장으로 배부를 수 있는 장소였으며 아빠의 모습을 한 이름 모를 가장의 옆 테이블에 앉아 나를 채 용서하지 않은 아빠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당신이 포장마차에 가자고 하던 문자가 종종 ‘위로가 필요하다’는 글로 읽히곤 했다. 그것은 삶에 지친 우리가 서로에게 건낼 수 있는 작은 암호 같은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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