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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Feb 04. 2018

초록을 키워내는 일

삶을 사랑하게 되는 주문

 식물을 키우는 습관은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니 녹음이 가득한 유년시절을 보내며 늘 자연을 마주하며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가장 먼저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할머니집으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였는데 봄이면 솜사탕처럼 하얀 매화나무 꽃이, 여름이면 씨앗을 머금고 통통하게 부풀어오른 봉숭아 꽃이, 가을이면 석양빛으로 익어가는 감나무가 계절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엄마는 여름이 되면 마당에서 봉숭아 꽃을 따다 곱게 빻아서 잠들기 전 내 열 손가락에 올려두고 비닐을 씌워 실로 꽁꽁 묶어주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석양이 내려앉은 손톱을 보며 첫 눈이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첫 눈이 오는 날까지 손톱 위의 봉숭아 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엄마의 이야기는 필기를 하다가도, 편지를 쓰다가도 자주 내 손을 내려다보게 만들었다. 



 할머니집 마당에 자리한 작은 정원은 식물에 대한 애정을 싹 틔워준 장소였지만 사실 그보다 더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은 바로 베란다 가득 초록을 키워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어디서든 마음 둘 곳이 필요할 때면 화원이나 꽃집에 들러 작은 화분 두 어개를 데리고 오는 습관은 주말이면 베란다에서 식물들에게 매일 물을 주던 엄마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보고 자란데서 비롯되었다. 종교에 대한 갈증 없이도 어디서든 내가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던 이유 역시도 식물을 키우는 일이 나에게는 마음을 위로하는 일과 같았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제주도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부모님과 약속한대로 3년이 넘는 시간을 모두 기숙사에서 지냈다. 기숙사는 방학이 시작될 때면 한 학기동안 사용했던 짐을 모두 치운 뒤 방학동안 이용할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이 정리해야 했다. 한 학기동안 입고 쓰던 것들을 몇 개의 박스에 담고 육지로 택배를 보내는 난리통 속에서도 나는 매번 작은 화분을 챙겨 고향으로 가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곤 했다. 제주에서 김해행 비행기를 타고 또 공항버스를 타고 한 시간동안 집으로 향하는 동안 내 품에는 늘 한 학기동안 나와 함께 해준 식물이 함께였다. 초록이들과 함께 집에 닿으면 엄마는 늘 그 식물들을 조금 더 넓고 예쁜 화분에 옮겨 심었는데 방학의 끄트머리 즈음이면 더 크고 푸른 잎사귀로 키워냈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학교 가는 길목에 자리한 커다란 비닐하우스의 화원에 내려 3000원의 작은 허브 화분을 두어개 안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것은 새로운 학기를 앞두고 나의 신성한 의식과도 같았다. 더도 덜도 말고 한 두개의 화분이면 고향을 떠나 제주에서 살아가는 외로움을 달래는데 충분했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매일 아침마다 창 틀에 놓인 초록이들에게 물을 주고 신선한 바깥 공기를 쐬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마음에 얼마만큼의 여유를 주는지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나는 스무살 이후로 어디에 머물던지간에 작은 화분을 데려와 키우는 일을 소소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도 시들지 않고 씩씩하게 푸르름을 뽐내며 자라는 식물들의 모습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화분 하나 들였을 뿐인데 기숙사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왠지 들떠있었던 것은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였다. 작은 식물 하나로 내가 머무는 공간이 애틋해지는 그 오묘한 설레임이 꽤나 소중했다. 바쁜 일과 중에서도 식물의 안부를 묻고 창가에 꺼내두는 나의 행동들에서 소소한 책임감과 행복을 느꼈다. 



 이따금 놀러오는 손님에게 내어줄 파스타 위에 직접 키워낸 바질을 올릴 때면 잠시나마 할머니처럼 농부가 된 것만 같았다. 하루에 한번 머리를 쓰다듬 듯 바질을 쓰다듬었고 녀석들은 그 사랑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윽한 향기를 가득 피워냈다. 1년 동안 호주에서 키우던 나의 바질은 어느 날 태풍에 날아가 자취를 감춰 버려 채 한국으로 데리고 오지 못했지만 그들이 그리워질 즈음 서울의 첫 자취방에서 새로운 녀석들을 선물 받았다. 아주 잠깐의 시간동안 햇빛이 허락되는 원룸이었지만 내리쬐는 햇살을 가득 받을 수 있도록 창틀 한 켠에 식물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고 엄마가 하던 것처럼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주기도 했다. 그리고 두 번의 이사를 하는동안 우리집에서 자라던 식물들은 엄마의 품으로 가서 큰 나무가 되어가는 중이다.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지도 어언 10년 째, 텅 빈 집에 들어설 때면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를 안도감을 선물한다. 나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또 그에 대한 책임이 삶에 대한 욕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토록 작은 창가에서도 녀석들이 소리없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커나가리라는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없어진다. 나는 이 작은 녀석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지만 녀석들은 내 하루하루의 희망을 책임지고 있다.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식물을 키워내는 일은 또 내일 조금 더 성장한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나에겐 내일을 살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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