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분동지의 신혼(그림) 일기
결혼을 해도 아이가 없으면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주위 선배들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친정과 시댁이 모두 멀고도 먼 지방에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이따금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는 점은 확실히 다른 점이긴 하지요. 그런 친구를 매일 기다리는 일은 저에게는 아주 즐겁고도 행복한 일입니다. 물론 피곤한 그에게는 무척이나 난해할 때가 많겠지만 말이죠.
서른에 뒤늦게 시작한 회사 생활, 그리고 이렇다 할 경력 없이 그동안의 잘 쌓아온 인맥 덕분에 2년 반의 시간동안 5번의 직장을 흘러왔다. 현재 다니는 회사 역시 처음 문을 연 곳인데 나는 이 곳에서 이벤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계 회사라면 응당 그러하듯 나는 미국에 있는 본사와 한국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돕고 행사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은 남들이 놀 때 일을 해야 하고, 큰돈을 쓰는 역할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팀들 보다도 재정팀의 압박이나 외부의 압박이 많은 편이었다.
회사 업무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남들의 뒷 이야기를 하는 점심시간을 견디는 것 또한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막내로서 그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내는 일을 당당히 거부하고 뒤늦게 따라오는 눈치와 어떤 압박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내가 잘할 수 있고 또 오랫동안 마음 수련을 위해 해왔던 요가를 다시 수강하게 되었다. 사실 요가를 하는 것은 내 스트레스를 견뎌내기 위함도 있지만 매일 피곤에 절어 들어오는 남편을 마냥 기다리지 않기 위함과 그의 체력과 나의 체력의 수평을 맞추기 위함도 있었다.
꽤나 독립적인 삶을 살았던 나였지만 낯선 땅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야근을 자주 하는 그로 인해 혼자 때우는 끼니는 결혼을 하기 전이나 하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쩌면 내가 느끼는 허기는 외로움과도 비슷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요즘은 이따금 생각하곤 한다. 나는 운동을 하고 돌아와 언제나 느지막이 혼자 외로움을 끼니로 대신 채우곤 했다. 그는 여전히 알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혼자 밥을 먹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누워 있다 보면 그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정적을 깨는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주인을 기다린 강아지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만다.
그가 돌아오자마자 마법처럼 터진 내 입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고 그는 언제나 “발 먼저 씻고 오면 안 될까?”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가 발을 씻으러 들어간 동안에도 나는 하루 종일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쏟아내곤 하는데 그의 지친 얼굴을 봐도 참을 수 없는 나의 말에 대한 욕구는 고갈되지 않는다.
그는 종종 참지 못하고 결국 이런 말을 건네곤 한다.
“혹시 내 귀에 뭐 흐르고 있는 거 아니야? 피나는 거 같은데. 아니면 네 목에서 나고 있거나...(삐질)”
하루 종일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피곤에 절어온 그의 고막은 집에서 언제나 2차 테러를 당하곤 한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게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나이를 먹으면 그에게 보청기를 사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