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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Nov 25. 2019

36화. 난 아직 아닌가 봐요

리분동지 신혼(그림) 일기

 얼마 전, 아빠의 생신 겸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부쩍 나이가 드신 할머니의 시집살이와 그간 아빠의 성장배경 그리고 엄마의 일상을 엿보면서 결혼을 하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아주 많이 깨달았습니다. 

엄청난 희생과 책임으로 빚어진 제가 이렇게 건강한 어른이 된 것은 정말이지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 저는 그런 엄청난 희생을 감내할 자신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는 일은 아직 먼 미래의 것인 걸까요?







 할머니는 유독 심한 시집살이를 견디며 살아왔다. 18살에 가난한 집에서 또 다른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왔던 할머니는 악착같이 사시면서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집을 성장시키셨다. 몇십 년 동안 오일장이 설 때마다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시던 할머니 덕분에 우리 집은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었다. 여전히 시장에 나가시는 할머니를 뵐 때면 할머니가 더 나이 드시기 전에 그렇게 보고 싶어 하시는 증손주를 안겨 드리고 싶지만 엄마와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나는 자꾸만 자신이 없어진다. 엄마와 할머니만큼의 희생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 나에게는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서였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이슈에서였다. 아마 그것이 99%의 이유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현실에 대한 중압감은 꽤나 무거운 것이어서 나는 통장잔고를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었다. 단칸방에서 시작된 엄마의 신혼은 열심히 살면 조금의 희망이 있었지만 우리 세대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세대라 일컬어지는데 그런 우리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의 현실이 어떨지 자꾸만 상상이 되는 것이었다. 어려운 문제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현실이 깜깜하지만 아이를 맡길 곳은 없고 빚은 자꾸만 쌓여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일은 말이다.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오늘부터 열심히 살고 보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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