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e Dec 26. 2019

43화. 크리스마스에 싸운다면

리분동지의 신혼(그림) 일기

 번잡하고 비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주일 전에 미리 크리스마스를 보냈지만 내 말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었음을 그는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집에만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날은 그래도 같이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걸 만들어 먹는다던지 아무리 못해도 집 앞 카페라도 산책 겸 다녀오면서 일 년간 고생했다는 이야기도 하고 뭐 그런 그림을 기대했는데 크리스마스 날 아침은 역시 설거지 폭탄으로 시작했지 말입니다. 이브 저녁에 준비한 음식들의 설거지부터 뒷정리 그리고 오전 11시까지 일어나지 않는 남편을 보자 화가 나기 시작했고 결국 싸우고 말았습니다. 


 혼자 터덜터덜 걸어 쇼핑몰에 가서 옷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지나가는 행복한 얼굴의 가족과 커플들을 보는데 그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군요. 집에 돌아와 혼술을 하는 저에게 남편이 묻습니다. 


"우린 종교도 없는데 크리스마스가 그렇게나 중요한 거야?"라고 말이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을 백 번 이해하게 된 하루였습니다. 








 10개월을 함께 살아보니 싸우게 되는 이유는 정말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이더군요. 카페에 앉아 어른이 되고 처음 만난 옛사랑을 떠올렸습니다. 헤어짐의 이유도 만남의 이유만큼이나 다양했을 시절이었지요. 같은 기숙사에 살던 우리가 매일 저녁 산책을 하거나 스쿠터를 타고 캠퍼스를 누비던 기억과 우리가 자주 가던 편의점은 여전히 따뜻한 기억이었고, 매일 밝게 인사하던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주시던 편의점 이모와 사장님도 그리웠어요. 제가 이별을 한 후 혼자 편의점에 갔던 날, 이모님은 혼자 온 저에게 이유를 물으시더군요. 달라도 너무 달랐던 우리가 그냥 권태로움에 결국 헤어지게 된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이모님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맞물려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지셨어요. 그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죠. 


저는 그의 비행기 시간을 확인하고 공항으로 달려가 그에게 고마웠다는 말과 포옹을 마지막으로 전해줄 수 있었어요. 아마 그 이모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해요. 


 무튼, 이모님이 저에게 건내 주셨던 사랑의 정의는 10년이 지난 지금의 남편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며 뿔난 감정을 툭툭 털어버린 채 집에 돌아왔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역시 케빈과 함께 보내야 제 맛이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41화. 뒤늦은 패션 자부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