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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an 29. 2021

91화. 그런 줄만 알았지

리분동지 신혼(그림) 일기

 세상에서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는 말을 이따금 곱씹어 보곤 합니다. 기침, 가난 그리고 사랑 말입니다. 저는 꽤 숨기지 못하는 솔직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기분이 언짢을 때도 표정을 숨기지 못해 애를 먹기도 하지만 사랑 앞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나름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수고로움 위에 눈치 빠른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난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연애는 생각지도 못했던 저는 한 달간의 프로젝트를 하며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때는 제가 4년 동안 단단하게 쌓아온 일상과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자존감도 꽤나 높은 사람이었는데 결혼을 한 뒤 저는 얼마나 많이 바뀌어버린 걸까요. 아니면 혹시 처음부터 저는 이런 모습이었던 것일까요? 결혼은 아마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 남편과 술을 마시며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호주에서 강인하고 단단한 제 모습에 이끌려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곁에서 지켜본 저는 너무나도 여리고 손이 많이 가고 하나부터 열까지 지켜봐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호주에선 혼자 살아남아야 했기에 딱딱한 껍질을 잔뜩 두르고 살던 제가 낯선 서울에 돌아와선 다시 애벌레의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결혼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남편 입장은 모릅니다만...) 제 부족한 부분을 불평 없이 묵묵하게 채워주는 사람이 있어서 또 그런 저를 챙겨주면서 사랑을 느끼는 그를 보면서 아주 잘 맞는 퍼즐이 맞춰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하거든요. 한국에서의 연약한 저는 이제부터 차근차근 단단해지면 되죠 뭐. 오늘보단 내일 더 단단해질 수 있길 바래봅니다 :)








@ 한 때 강인한 여성(?)이었던 1인 _ 사막 횡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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