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계절의 끝에 다시 봄이 왔다

에필로그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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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어 돌아온 고향에서는 잘 허기가 지지 않았다. 꾸역꾸역 끼어 타야 했던 지하철도 존재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시간에 쫓겨 바삐 달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계절의 시계에 맞춰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응당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레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할머니는 군식구가 셋이나 늘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우리를 받아주셨다. 할머니 집 곁에 있는 작은 텃밭들을 할머니와 함께 가꾸며 이따금 오일장에 농작물을 팔러 가시는 할머니를 배웅하기도 하고 마당에서 고추를 다듬기도 하고 마늘을 엮기도 하며 인생에서 가장 느린 계절들을 보냈다. 그들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시간이 저마다 다르듯 우리 역시도 저마다 꽃을 피울 계절이 다르기에 결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할머니 곁에서 겨울, 봄, 여름을 나고 여름이 깊어가는 8월에 엄마가 되었다. 고향에 작은 전셋집을 얻고 할머니 그리고 아기와 함께 또 다른 사계절을 보낼 수 있었다. 하루하루 다른 모습의 계절이 찾아왔고 그 모습들을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초록이 노랗게 영글어가는 모습을 두 눈 가득 담으며 아이도 훌쩍 자라 어느덧 걸음마를 시작했다.



엄마가 되어 잠시 멈춰있는 듯 보이지만 겨우내 냉이가 씨앗을 품고 싹을 틔울 준비를 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언젠가 피어날 새싹을 위해 열정을 가득 머금고 있다. 잠시 멈춰있는 지금이 결코 외롭지 않은 것은 곧 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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