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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Nov 24. 2022

126화. 해외살이의 매운맛

제시의 어설픈 육아 그림일기

 동남아는 여행만 해봤지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라 해외생활 두 달 차인 어설픈 엄마는 여전히 크고 작은 것들을 부딪히며 적응해나가고 있습니다. 먼저 아기가 먹을 음식을 구하느라 이리저리 필요한 것들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강아지에게 필요한 물건과 사료를 구하러 다니기도 하고 마지막으로는 짝꿍과 저에게 필요한 음식들을 장만하느라 바쁜 하루들을 보냅니다. 임신하기 전에 배웠던 베트남어는 오랫동안 복습을 하지 않아서 다시 까막눈이 되었고 베트남어가 필요할 때면 파파고를 허겁지겁 켜서 통역이나 번역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관습에 젖어 한국에선 편하게 지냈었는데 이곳에선 ‘엄마’인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굴러가지 않아서 용케 강인한 엄마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점점 더 단단해져가기도 하고 말입니다.







 해외생활을 하다 보면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은 바로 한국의 빨리빨리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류 처리를 하는데도 한참이나 걸리지만 일상생활에서 고장 나거나 부서진 것들의 수리가 필요할 때도 꽤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이사했을 때 바로 고쳐준다던 창문은 이사 온 지 한 달이 다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대로이고 고장 난 인덕션은 한 달만에 겨우 수리를 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청소를 도와주시는 아주머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외국인이라 말이 안 통하니까 바쁜 다른 일부터 먼저 처리하느라 우선순위에서 밀린 거라며 매일 찾아가서 귀찮게 해야 빨리 고쳐준다고 그게 바로 베트남 방식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윗층의 소음은.. 베트남에선 일상적인 부분이니 그것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이죠. (저 굉장히 무딘 편인데 한 달동안 찔끔찔끔 공사하는 윗층은 정말 너무 합니다..) 저는 무언가를 찾아가서 따지고 요구하는 성격이 아니라 이런 일들이 꽤 스트레스로 다가오곤 한답니다.


 얼마 전에는 베트남 거주증 발급을 위해 집주인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아주머님이 육아로 많이 바쁘셔서 부동산 담당자에게 이를 부탁해서 함께 진행 중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금액의 수수료를 부르더군요. 꼼꼼한 남편이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한 결과 서류 발급에는 돈이 들지 않고 행여나 에이전트가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금액을 부를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좋은 집주인 아주머님을 만나서 아주머니가 중간에서 이런 상황들을 해결해주셔서 다행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스스로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분명 호주에서 혼자 살 때는 해외생활이 이처럼 매운맛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가족이 생기고 책임감이 더해지니 모든 순간들에 바짝 정신을 차리고 지내느라 고단한 일상이 두 달째 이어지는 중이네요. 덕분에 한국에서 짝꿍이 자주 앓았던 불면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저는 누우면 바로 자는 습관이 여기서도 쭈-욱 이어지는 중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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