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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Dec 01. 2022

127화. 애견인의 숙명

제시의 어설픈 육아 + 그림일기


 집을 구할 때면 모두가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매물을 둘러보겠지만 반려인이 된 저희 가족은 집을 구할 때 제일 먼저 ‘강아지 프랜들리’ 여부를 확인합니다. 강아지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아니라면 애초에 다른 조건들을 보는 것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이든, 베트남이든 강아지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많은 매물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 것 또한 반려인의 숙명이겠지요…(그래서 내 집을 하루빨리 가지고 싶지만 그 마저도 현실적으로 더더더 힘들어지는 요즘…)


 베트남에 도착한 우리는 5명의 중개인을 통해 매물을 알아보면서 집을 구했습니다. 아파트 분위기가 어떤지, 유모차를 밀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인지가 우리에게는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주변에 인프라가 부족하고 멀리 동떨어져 있지만 살기로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입주를 하고 나니 한 달 만에 갑자기 너무 많은 조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강아지를 안고 산책을 나가는데 로비는 사람이 다니는 곳이니 개는 지하 주차장으로 다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에는 산책 후 강아지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안내 방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제가 탈 때마다 안내 방송을 하기에 어느 날 함께 탔던 외국인에게 물어보니 개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했다는 것이었지요. 너무나도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그러노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강아지 목줄과 입마개를 하고 타라고 경고문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는 입마개를 하고 고장이 나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습니다.ㅠㅠ 머리로는 반려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십분 이해하지만 하루하루 추가되고 바뀌는 규정들에 이 집을 선택한 이유가 없어지는 중입니다. 이런 순간들을 겪을 때마다 고향이 너무나 그리워집니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상황을 마주했을 때 오는 허탈함과 해탈 같은 것들, 요즘은 그런 감정들을 다양하게 마주하고 있습니다. 15곳의 집을 둘러보면서 유모차를 끌고 강아지와 산책할 수 있는 환경 하나를 보고 이 집을 선택했었는데 그것마저도 이제 힘들게 되었으니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합니다. 낯선 나라에서 아기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며 외로움을 이겨내고 있었는데 입마개를 한 이후 고장 난 강아지를 끌고 유모차와 함께 지하 주차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인내심을 열심히 키우는 중입니다. 사람들이 개똥만 잘 주웠더라면, 공용 공간에서 펫티켓만 잘 지켰더라면 이런 규정은 없었을 텐데요. 집을 구하기도 어려운데 하루하루 어려운 상황들까지 마주하면서 반려인으로 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실히 느낍니다.


 인생은 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고 또 그런 상황들은 늘 우리를 성장하고 깨닫게 만드니 지금도 그런 시간인 것이리라 믿으며 베트남 생활도 이제 두 달을 넘겼습니다. (대단해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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