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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Dec 10. 2022

128화. ‘우리’의 시작

제시의 어설픈 육아 그림일기

 17개월에 접어든 아기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참 많은 소란을 만들어냅니다. ‘안아’라는 말부터 ‘맘마’ 혹은 ‘쪼쪼이(쪽쪽이)’같은 단어들을 읊으며 요구사항을 분명하게 주장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육아가 처음인 엄마는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낯선 나라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육아에 지쳐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친구 하나 없이 타지에서 외로운 육아를 하며 이따금 과거를 추억하곤 합니다. (과거 여행을 참 좋아하는 저입니다. 미련이 많은 성격도 추억 여행에 큰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찰나에 종종 찾아오는 생각들이 저를 호주까지 데려다주곤 하거든요. 아마 호주 대륙을 마음껏 여행하며 사랑을 했던 그 시절의 ‘우리’가 그리워서 일 것입니다. 남편은 과거에서 살고 있는 저를 꾸중하며 현실을 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시절의 추억 덕분에 오늘을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배들과 술을 마실 때면 시나브로 대화의 주제가 되던 ‘연애’. 선배들은 늘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 연애를 하며 자신의 세상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조언에 따라 저는 충실히 연애 생활을 했고 다양한 성격과 취향,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둥글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도 모난 구석들은 적당히 있지만요) 물론, 연애를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닮아가는 일은 제가 좋아하는 사랑의 순기능 중 하나였습니다. 브라운 아이즈의 노래를 좋아하는 일, 클래식 문학을 찾아 읽는 일, 필름 카메라의 사진을 좋아하는 일… 뭐 그런 것들이 지난 사랑들이 저에게 남긴 흔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튼, 제가 지금의 짝꿍과 결혼을 하게 된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자면 그건 우리가 함께 했던 한 달간의 프로젝트에서부터 였습니다. 호주의 서쪽으로 여행을 오는 인센티브 그룹의 인솔을 위해 함께 일할 사람을 뽑던 인터뷰에서 그를 만난 것이 첫 시작이었지요. (저는 사실 첫눈에 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쿨럭) 이틀에 한 번 꼴로 사막으로 향해야 했던 여정이었지만 설레는 마음이 있기도 했고 또 제가 좋아하는 곳을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기쁨이 한 달간의 힘든 프로젝트를 해내는데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 40도를 웃도는 미칠듯한 사막의 더위 속에 머물며 여러 개의 팀으로 나뉘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사막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하며 몇 시간을 꼬박 사막에 머물다 보면 땀에 흠뻑 젖어 매력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되곤 했습니다. ‘이런 내가 무슨 사랑이야, 일이나 열심히 하는 거지’라는 마음으로 한 달을 꼬박 보내고 함께 일한 사람들과 이따금 저녁이나 커피를 나누며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작은 기쁨이었지요. 하지만 이 와중에 온 몸을 바쳐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땀냄새를 풀풀 풍기는 까만 여자를 ‘멋지다’고 착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지금의 남편입니다.) 그는 저조차도 초라하게 생각하던 제 자신을 자꾸만 일으켜 세워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 자신도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세상에 맞서고 있었는데 그런 용기는 어디서 얻게 된 것일까요. 사랑은 정말 위대합니다!) 뭐, 제가 그를 만나고 한국에 돌아와 썩 대단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지만 상상해본 적도 없는 ‘엄마’가 되었고, ‘베트남’에서 씩씩하게 적응하고 있으며, 하루하루 잘 버텨내고 있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렇게 최면을 걸어봅니다.) 베트남 살이 두 달 반째. 해외살이의 외로움과 육아로 자주 다투는 요즘, 우리에겐 ‘처음’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때의 마음이라면 지금의 어려움정도는 거뜬하게 이겨냈을 테니까요.


 우리 가끔 힘들어질 때면 ‘처음’으로 돌아가 그 마음을 다시 되새겨 보기로 해요. 그 설레는 ‘처음’에는 분명 무엇이든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다짐이 있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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