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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Dec 23. 2022

129화. 문득, ‘그런 날’

제시의 어설픈 육아 그림일기

 누구에게나 이따금은 찾아오는 ‘그런 날’. 해외생활을 할 때는 “I feel blue”라고 표현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베트남에 적응을 하느라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기에도 바쁜 요즘, 저 역시도 매일 예상치 못한 일들을 해결하느라 심신이 지쳐 결국 폭발을 하고 말았습니다. 늘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며 살았기에 누군가에게 쌓아두었던 말을 쏟아내는 것도 늘 조심스러웠지만 베트남에서는, 특히 해외생활을 하면서는 더 ‘억척스러워’ 질 필요가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 바입니다. 나를 믿고 바라보고 있는 존재들이 있기에 그들을 지키기 위해 조금 더 독해져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베트남 생활 세 달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반려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디에서나 어렵지만 특히나 함께 해외 생활을 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인 것만 같습니다. 비행기를 태우는 일부터 다른 나라에 입국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는 일 그리고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안정적인 장소를 찾는 일까지 말이죠.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모두 통과했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역시도 강아지 그리고 아기 유모차를 밀며 산책이 가능한 아파트를 찾기 위해 16곳의 매물을 둘러보았지만 결국 저희가 입주한 곳은 입주한 지 한 달 만에 반려동물에게 가장 엄격한 아파트가 되었습니다. 로비에 강아지의 발이 닿으면 안 되는 일, 강아지는 지하 주차장으로 다녀야 하는 일, 화물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일 거기다 최근에는 강아지 입마개를 해야 하는 일까지 심바는 베트남에 적응을 채 하기도 전에 여러 변화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제는 이다음인데요, cctv로 감시하는 문화가 있는 베트남에서는 제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방송을 하고 심지어는 경고장까지 들고 찾아와 사인을 하라고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강아지가 입마개를 안 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더군요, 물론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기저귀만 하고 있는 아이를 한 손에 안고 리셉션을 찾아가 도대체 뭘 잘 못했냐고 한참을 따져 물었습니다. cctv를 자세히 살펴보라고 화를 엄청 내고 돌아오니 한참 후에 매니저라는 남자가 집으로 찾아왔더군요. 강아지 색과 입마개 색이 똑같아서 몰랐다고 미안하다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사과에 무척이나 인색한 베트남 사람 특유의 모습답게 빌딩에서 강아지를 키울 때 필요한 규율들을 다시 한번 잘 봐달라며 이야기를 하기에 결국 저는 유리창은 깨진 지 두 달이 넘도록 여덟 번이나 찾아오기만 하고 서류에 사인만 받아가더니 고쳐주지는 않고 너희들이 원하는 바만 집요하게 찾아와서 요구를 하는 거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저는 펫티켓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광광 우는 저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던 매니저는 흥분하지 말고 차근히 이야기를 하라고 했지만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 몇 달 동안 강아지를 키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는 게 억울해서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관계도 채 형성되지 않은 누군가 앞에서 다 큰 어른이 운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그렇게 단전에서부터 쌓인 울분을 쏟아내며 그제야 겨우 속이 좀 후련해졌습니다. 남편에게도 한국에 돌아가야겠다고 폭탄선언을 했고 그는 부동산 중개인과 집주인에게 연락해 이 상황들을 비난하며 조금이나마 제 마음을 풀어보고자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무튼, 결론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냈고 아기와 단 둘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습니다. 이렇게 지치고 힘들 때는 엄마가 해주는 밥 한 그릇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도 하더라고요. 17개월 아기를 데리고 (아, 비행기를 탈 때면 19개월입니다) 단 둘이서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지만 그래도 한동안 엄마 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무튼, 하고 싶은 말 속 시원하게 하고 사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뒤는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일까지 때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늘 나보다는 ‘누군가’를 위해 사는데 익숙해져 있기에 가끔은 ‘스스로’를 위해 사는 것도 필요한 거라고 감히 제가 당신을 위로해 봅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꼭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봅니다. 메리크리스마스 :)








@펫티켓 잘 지키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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