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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an 17. 2023

132화. 나를 위로하는 것들

제시의 어설픈 육아일기


 마음이 텅 비어 외로움을 마치 허기로 착각하게 되는 시간들을 이제야 겨우 지나왔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걸 보니 그제야 그것이 허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말입니다. 그 허기진 시간을 견디는 동안 내 곁에 무엇이 나를 위로해 주었는지를 돌아보다가 문득 그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일지라도 그것이 다른 이에게는 ‘의미’를 지닌 무언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그것들을 구하기 까다로운 해외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요즘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고 강아지와 산책을 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커피 믹스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금 깨닫는 중입니다. 채 잠에서 깨지 못한 저를 책상에 앉히고 펜을 쥐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거든요 :)






 커피믹스는 한국에서보다 해외에 있을 때 더 의미가 깊어지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주전부리지만 외국에서는 그 흔한 믹스 커피 한잔을 마시는 일이 꽤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일단 한인마트를 찾아서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죠.. 가격도 한국보다 더 비쌉니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커피는 호주 아웃백을 횡단하면서 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손발을 비비며 법랑컵에 쪼르륵 물을 부어 마셨던 믹스 커피였는데요, 비록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 커피 한잔을 마실 때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육아를 시작하고 스스로에게 문득 삶의 의미를 묻게 될 때면 어김없이 믹스커피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그 시절의 뜨거웠던 제가 생각나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산티아고를 걷고 돌아와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찾은 호주. 관광비자가 허락되는 3개월 동안 쓸 수 있는 그때 통장의 잔고는 고작 28만 원이었고 하루 세끼를 먹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꽤나 궁핍하게 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갔던 호주였으니 집에 손을 벌리기도 참 난처한 상황이었거든요. (웃음) 하루를 쫄쫄 굶다 점심 즈음 사 먹었던 컵라면 하나가 얼마나 맛있었는지는 정말 다시 떠올려봐도 감동적이네요. 호주의 한인마트에서 1800원쯤 했던 컵라면 하나가 그 시절의 저에게는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소중한 끼니였습니다. 요즘은 육아를 하느라 아기 반찬을 준비하고 기력이 없으면 종종 찾는 단골손님이기도 합니다. 하고많은 컵라면 중에 신라면이 등장한 이유는 호주에서 제 기억에 아주 강렬하게 남은 식사였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썩 살림을 잘하지 못해서 남편에게 자주 미안한 저는 요즘 이 ‘코인육수’ 덕분에 살림이 조금 재미있어졌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이따금 체력의 여유가 있을 때면 아이를 텔레비전에게 잠시 맡기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요, 음식의 간이 조금 심심하다면 이 친구의 도움을 빌리면 됩니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돌아와 맛있게 저녁을 먹으며 “이건 내가 먹은 떡국 중에 제일 맛있어!”라는 감탄사를 남길 때, 주부로서의 자신감이 자라나는 기분입니다. 이따금 시어머니 혹은 엄마와 통화를 하며 “밥은 잘 먹고 있니?”라는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코인육수’ 덕분입니다.


 18개월에 접어든 아기 역시도 이유식을 잘 먹게 하기 위해선 ‘깊은 맛’이 필요한데요, 코인 육수 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은 아기를 위한 ‘육수팩’이 있어서 육수를 미리 만들어놓기만 하면 아기 반찬이나 국을 끓이는데 무척이나 유용하더라고요. 세상이 발전하면서 육아도 점점 진화해 가는 듯합니다.





 처음 베트남으로 가기 전, 남편은 우리의 베트남 일정이 6개월 정도일 거라고 말했습니다. 박스 5개와 캐리어 두 개가 짐의 전부였기에 책을 들고 올 여유는 전혀 없었지요. 하지만 일정이 한 달, 두 달 차곡차곡 길어지면서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책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고 장기적으로 봤을 땐 종이책을 구하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에 전자책 구독을 시작했습니다. 아이패드나 핸드폰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짬짬이 읽고 있는데 적어도 한 달에 두세 권씩을 읽게 되니 일 년이면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고 있답니다. 한 달에 9,900원을 내면 앱 내에서 서비스되는 책들을 모두 읽을 수 있어서 요즘은 인문학에서 벗어나 과학이나 철학 쪽 책들도 한 두 권씩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을 따라 먼 나라에 와있지만 마음의 공백까지 남편이 모두 메워줄 수는 없는 부분이기에 그런 허전함들을 채우는 노력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독서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에 마음의 공백이 조금은 메워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오래도록 좋은 책들을 곁에 두고 지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강아지와 함께 타지 생활을 하는 것도 힘든데 타국 생활을 한다는 것은 더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그것도 돌을 지난 아기와 함께라면 말이죠. 어마어마한 짐을 들고 ktx를 타는 것부터 인천공항에 가는 것까지 정말이지 너무너무 힘들어서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지만 그래도 심바를 데리고 온 것은 정말이지 잘 한 선택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강아지를 가족에게 맡기고 오라고 권유를 하기도 했지만 저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있어서 다소 분리불안 증세가 있는 심바를 두고 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의기소침해진 제 곁에 앉아 체온을 나눠주는 이 작은 존재에게 늘 위안을 받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심바가 좋아하는 산책을 위해 아침 여섯 시면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향하는 일뿐이지만 사실 그렇게 부지런히 아침을 맞이하면서 저 역시도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고 조금 더 의욕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침 산책은 심바와 제가 늘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고 말이죠 :)




 대학 새내기 배움터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이자 지금은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 친구는 올해 가족들과 함께 인도 파견을 위한 준비 중입니다. 원래는 친구네의 인도 파견 소식이 먼저였지만 코로나로 예상했던 일정이 모두 미뤄지며 어쩌다 보니 저희 가족이 먼저 베트남에 오게 되었지요. 인도 파견을 위해 블로그와 현지 카톡방의 소식들을 살피며 꼼꼼히 준비하던 친구와 달리 별다른 준비 없이 덜렁 베트남에 온 저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애개육아에 치여 스트레스가 참 많았습니다. 특히나, 그날은 친구의 전화를 받고 터져버린 울음에 친구 역시도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거린 채로 통화를 마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친구가 택배 하나를 보내왔습니다. 원피스와 함께 가지런히 담겨 온 편지에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힘들 땐 혼자 울고 있지 말고 언제든 연락해”라는 따스한 문장이 담겨 있었지요. 몇 번이고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백 마디 말보다 손으로 써내려 간 하나의 문장이 때론 더 따뜻하거든요.



 

 호찌민은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조금씩 더워지고 있습니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더 더울 날들만 있다고 하니 그 뜨거움이 채 가늠이 되지 않는데요, 그래도 이른 아침이면 샛별이와 심바를 데리고 나와 이따금 호찌민의 시간들을 만끽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랍니다. 작고 소소한 것들에게서 위안을 받으면서 휑하게 바람이 드나들던 마음을 채워봅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비어있던 마음이 언젠가는 채워지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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