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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Mar 17. 2023

135화. 잠시 거리두기

제시의 어설픈 육아일기

 샛별이의 예방접종과 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 찾았던 한국. 2주가 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하면서 샛별이가 그만 전기밥솥에 화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미루고 화상치료를 위해 먼 곳에 있는 병원까지 왔다 갔다 분주히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와 저는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피로를 어쩌지 못하고 서로에게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는 제가 한국에 와있는 동안 회사일이 훨씬 바빠져서 주말까지도 반납하고 일을 하던 상황이었고 강아지는 홀로 집을 지키며 새벽 두 시가 넘도록 남편을 기다리던 상황이었거든요. 다시 돌아가는 일을 생각하니 18개월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일부터 막막해졌던 제가 남편에게 뼈 있는 말을 던진 것을 시작으로 싸움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말았습니다.


 7년을 만나는 동안 이렇게까지 싸워본 적은 없었는데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문장들로만 싸운다는 것은 서로를 생각하지 않고 ‘나의 의견’만 전달하는 역할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들은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라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말았고요. 아무래도 낯선 베트남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존재하고 있었고 서로 잔뜩 지쳐 위로와 격려를 해주지 못하고 피로가 쌓여가는 상황 속에서 결국 다투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난생처음 ‘그만하자’는 그의 차가운 말을 받아 들고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일주일 동안 먹어도 먹는 것이 아니고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닌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조금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시 베트남행을 강행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고요. 한국에 있는 동안 부쩍 말이 많이 늘었던 샛별이를 보고 있으니 상황이 허락되는 동안 한국에 조금 더 머물며 서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결론을 맺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조금 멀리서 서로를 지켜봐야 애틋해지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관계는 맺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문장을 최근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부부라는 인연을 맺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아이가 생기고 책임질 것들이 많아지면서부터 그 문장들은 더 자주 와닿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 헤어지는 일을 언급하고 난 뒤 일주일 동안 아주 오랜만에 ‘알바천국’이라는 앱을 열어서 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엄마라는 것은 슬퍼하기보다 당장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역할이더군요. 물론 이런 일들을 겪다 보니 그동안 글을 쓸 여유가 없었네요 ;(


 남편도 그날은 새벽 3시에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나눈 대화라 감정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다며 사과를 했습니다. 물론 저도 고된 가장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고 말입니다. 일단 올해가 다 끝나기까지 서로의 위치에서 열심히 지내며 ‘가족’에 대한 생각들을 가다듬어 보기로 합니다. 샛별이에게도 고향의 이곳저곳을 마음껏 보여주기로 했고 말이죠. 봄이 오는 오솔길을 걸으며 마음껏 행복해하는 샛별이를 보니 조금 더 머무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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