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르틴 델 카미노 - 산타카탈리나
어제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며 예약했던 아침식사를 위해 마을 초입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내가 머물렀던 알베르게는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인력이나 공간이 넉넉지 않아 마을 초입에 있는 카페에서 대신 아침식사를 준비해주는 것이라 했다. 유일한 외국인 손님이었던 나는 스페인 아주머니, 아저씨들 사이에 끼어 함께 식사를 했는데 모두가 나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가져준 덕분에 스페인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침부터 에너지 넘치는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해서 나도 함께 기운이 솟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느새 나에게 '건배'라는 단어를 배우더니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건배"를 외쳤다. 서로를 알아가는 작은 노력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그런 아침이었다. 인심 좋은 카페 아주머님은 커다란 커피잔 가득 카페 콘 레체를 담아주시는 것도 모자라 바삭바삭 구운 바게트와 버터 그리고 직접 만든 잼을 내어 주셨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다시 여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동이 터오는 하늘은 무척이나 예뻤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속도 제한 표지판은 100이라는 선명한 숫자를 뱉어 내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열심히 잘 걸어준 나 자신에게 100점이라는 점수를 내려준 것만 같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니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지난밤 앤의 말은 지친 나를 북돋워주는 너무나 고마운 한 마디였다. 초록이 가득한 그녀의 말은 숲과 닮았다. 그녀는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어 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국을 그리워하는 나에게 그녀는 지금처럼 노력하다 보면 언제고 다시 기회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제나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곳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해외에서의 삶은 익숙하고 편했던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도전과도 같았다. 산티아고로 떠나오기 전 비자를 줄 테니 호주에서 조금 더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꽤 오래 고민했지만 내가 호주에서 매일처럼 일하며 6개월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산티아고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막연한 동경과 기대만으로 호주의 삶을 선택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기회를 잡지 않았지만 후회도 남지 않았다. 만약 그게 정말 나의 기회였다면 언젠가는 나에게 또다시 그 기회가 주어질 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그 기회를 뿌리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지만 아마 시간이 오래 지난다 해도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시간이 들었다. 나는 나의 직감과 확신을 믿는다.
하루하루 발걸음을 옮겨 어느새 산티아고에 부쩍 가까워졌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보다 더 많은 거리를 걸었고 어느새 산티아고도 머지않은 곳에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길을 걷는 내내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걷고 있다.
오르비고로 가는 길목은 집주인의 성격이 화단 가득 드러나있다. 어떤 집은 나무와 꽃들이 예쁘게 정리된 채 햇살을 가득 받으며 자라고 있고 또 다른 집은 특이한 동상과 조형물들이 마당 곳곳을 장식하고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처럼 '개조심'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던 몇몇 집들을 지나는 순간에는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개 짖는 소리만이 마을을 메우고 있는 시간,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묵묵하게 걸어내고 있었다. 내가 마을을 지날 즈음에야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블라인드를 걷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해가 긴 스페인의 아침은 언제나 조금 늦게 시작된다.
오르비고 다리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다리로 중세시대에 만들어졌다. 로마시대에 준공된 이 다리는 오랜 시간 동안 순례자들이 젖지 않고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후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 등을 운반하는데도 이바지했으며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성 요한 기사단의 영지)로 연결되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1434년 마상 창술 시합이 이 곳에서 열렸는데 레온 출신의 기사가 귀부인에게 모욕을 당하고 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한 달 동안 이 다리를 지킨 역사가 있다. 그의 기사도 정신은 훗날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쓸 수 있는 영감을 제공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위치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은 순례자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쿠로'를 닮은 강아지에게 인사를 건네고 고요가 맴도는 마을을 건넜다. 얼마 전 큰 개 '쿠로'와 함께 길을 걷던 스페인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애완동물이 허용되지 않는 숙소를 만나면 지친 몸을 이끌고 다음 마을까지 걸음을 옮기거나 조금 더 가격이 비싼 사설 알베르게에 묵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로는 그녀에게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그녀는 쿠로와 조금 더 어려운 선택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당나귀와 함께 길을 걷거나 리어카를 이끌고 가거나 혹은 무일푼으로 매일 걸음을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내 한 몸 건사하며 걷는 것도 힘든데 다른 이들은 또 다른 몫의 책임까지도 짊어지고 길을 걷고 있었다. 모두들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오르비고는 꽤나 아기자기하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마을 바닥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박혀 있었고 그 돌 하나하나를 밟으며 바라보는 풍경들이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햇살이 따스하게 스며든 마을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지나는 순간들이 마음의 행복을 도왔다. 마을을 떠나가는 길목에는 론의 생일을 축하하는 누군가의 메모가 붙었다. 나처럼 이 길을 걸으며 쪽지를 본 사람들은 이 귀여운 생일 축하에 저마다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건강하게 태어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하루를 축복했다.
쌀쌀한 아침과는 달리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나면 너무나 뜨거워지는 스페인. 긴 팔 옷을 여러 겹 껴입고 걸음을 걷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그들은 자로 잰 듯 평평하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더디지도 빠르지도 않게 걸음을 옮겼다. 길을 지날 때마다 다시 새로운 마을과 익숙한 혹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앞서 걸음을 걷는 순례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올라, 부엔 카미노"
이젠 습관처럼 입에 배어버린 이 인사는 내 곁을 스치는 또 다른 순례자에게 건네는 인사이자 곧 나에게 보내는 인사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며 나 역시도 다시 길을 걷는 힘을 얻었으니 말이다.
이름 한번 고약하게 길고 어려운 마을인 '산티바녜스데 발데 이글레시아'를 지난다. 이 마을엔 '성 삼위일체 성당'과 '산티아고 동상'이 있다. 마을의 우뚝 솟은 성당 앞 벤치에 잠시 앉아 쉬기로 하고 식수대에서 사과를 씻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햇살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인사를 건넸다. 미국에서 이 곳까지 신혼여행을 온 커플과 앤 그리고 그녀가 이 길 위에서 운명처럼 만난 그녀의 남자 친구였다.
우린 이미 아주 친한 친구라도 된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어색함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주머니에 있는 먹을거리를 나눠 먹으며 말이다. 앤은 나처럼 혼자 이 길 위에 섰지만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지금은 국적도, 걷는 이유도 각기 다른 사람들과 친구과 되어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다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고 어느덧 발을 맞춰 걷는 연인이 되었다고.
산티아고를 걸으며 운명을 만나고 산티아고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몇몇 커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그녀는 스페니쉬인 남자 친구에게 매일 영어를 가르쳐 주었고, 그녀의 남자 친구는 앤에게서 배우 영어로 일행들과 대화를 하며 한 달 새 영어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언어는 누군가에겐 큰 장벽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친해지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걸 그들을 보며 깨달았다.
앤의 일행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길을 나섰다. 다시 평온한 길 위를 걷는 중이다.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산티아고는 다른 말로 똥의 길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길에서 참 많은 종류의 배설물을 보고 또 밟았다. 오늘은 농장을 지나며 엄청난 소똥 냄새를 지나쳐야 했다. 두통까지 유발하는 냄새를 피해 급히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화살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길을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한 순간 멀리서 앤과 강아지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크게 안도했다. 마음이란 것이 이렇게도 쉽게 흔들리는 존재인지 그 전엔 미처 알지 못했었는데 내 마음이라는 녀석은 누구보다 훨씬 더 말랑 거리는 존재였다. 어느덧 보폭이 맞은 우리는 잠시 순례자들의 작은 추억이 모여있는 화살표 앞에 멈춰 서서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서로 다른 기도였지만 멀리서 보면 우린 결국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냄새 끝에 도달한 길은 카미노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길. 푸른 밀밭과 울창한 수풀림은 정말이지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함께 동화되어 걷다 문득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항상 눈을 감고 카미노를 그릴 때마다 들려오던 그 소리였다. 바람이 밀밭을 스치고 지나는 소리,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자 아무것도 없을 듯했던 평지에 도네이션으로 음식을 제공하는 가판대와 그 한편에 앉아 순례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코레아?"라고 물으며 "안녕하세요, 반가워요!"하고 한국말을 건넸다. 그를 통해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이 길을 지났고 또 지나갈지를 상상해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친 나의 걸음은 그의 씩씩한 인사 덕분에 다시 활기를 얻었다. 차 한잔을 권한 그지만 나는 그의 마음만 받겠다고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저 멀리 보이는 산 꼭대기에는 6월임에도 불구하고 녹지 않은 눈의 잔해가 까마득히 보였다. 이상 기후라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스페인 사람들도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어댔다. 인간들이 편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낸 많은 것들이 커다란 지구의 획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에 선 빙하가 빠르게 녹아가고 다른 한편에 선 점차 사막이 생겨나고 있는 풍경을 우린 이제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그들이 더 많이 바뀌어 가기 전에 그 아름다운 모습들을 더 많이 마음에 담아둘 수 있길, 하는 작은 욕심이 마음에 머문다.
고요하고 적막한 길 위엔 오늘도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앞서간 길을 또 다른 누군가가 뒤따라 걷는다. 사실 '길'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길'이 아니었고 누군가가 걸었던 흔적들이 모이고 모여 언젠가부터 '길'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 처음부터 '원래 그러했던 것'은 없다. 모두가 누군가의 노력과 손길로 이루어진 하나의 결과물 일뿐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말로는 나 역시도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이기도 했다.
아스토르가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마을의 평화로운 빨간 지붕을 내려다보는데 누군가가 "한국 분이세요?" 라며 말을 걸었다. 그 말에 뒤를 돌아보았더니 어제 홀로 길을 걸을 때 연두색으로 잔뜩 무장하고 길을 걸으시던 남자분이었다. 나를 보더니 이미 내 이야기를 들었다며 "씩씩하게 걸으시는 여자분이군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나의 강철 체력은 이미 길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꽤나 알려진 모양이다.
이 분은 꽤나 강인한 나의 체력도 지치게 만들 만큼 빠르게 걸었다. 이야기를 하며 같이 보폭을 맞추기엔 조금 어려울 만큼 말이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중 한 곳에 다니던 이 분은 나에게 대놓고 그런 이야길 했다.
"난 왜 이 길을 20대가 걷는지 이해가 잘 안돼요. 30대 정도가 되면 걸을 자격이나 이유가 생기는 것인데 20대는 너무 어린 거 아닌가요?"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자신만의 여정을 떠나는 것인데 성숙의 기준을 나이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편향된 생각이 아닌 것인지, 타인의 철학이나 삶의 기준을 숫자로 규정짓기엔 그 생각이 하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스쳐 지나갈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길 하기엔 나의 시간조차도 아까울 뿐이었다. 그는 꼭 이 길을 완주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마음 정리는 이미 히말라야 등정을 통해 하고 왔기에 산티아고를 되도록 빨리 걷고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준비를 하기 위해 비행기 표를 앞당겼다고 한다. 그래서 해가 떠있는 동안 계속 길을 걷는다며 말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애써 모두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그저 듣기만 할 뿐이었다.
아스토르가 광장에서 맥주 한잔을 하자는 그의 제안에 나는 잠시 배낭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오늘도 한참을 걸어야 한다며 시계를 보던 그는 30분 정도 맥주를 마시고 가겠다며 시계를 응시했다. 그리고선 '무엇을 하며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의외의 모습에 살짝 놀랐지만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가 이야기해준 것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곤 하지만 이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왔는데 어느 날 문득 밀려온 허무함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제출했더니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 들어왔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박차고 나온 것은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라고. 그저 남들이 '멋있다'라고 생각하던 직업을 전공이 아닌데도 선택했던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으며 또 다른 삶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나는 여운이 남은 이야기를 조금 더 곱씹어 볼 겸 더 오래 카페에 머물기로 했다. 그렇게 또 다른 짧은 인연에 인사를 건넨다.
다시 길을 나섰다. 이 곳엔 또 다른 가우디의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주교의 궁'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카미노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어 순례자들이 들어보면 좋을 장소로 가우디의 특징인 선과 다양한 색 그리고 독특한 공간 설정과 섬세한 조각들 역시 이 곳 아스토르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우디는 1887년 성공회 궁전을 설계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내부는 겉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둥근 천장으로 되어 중세적인 느낌을 주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련된 미를 뽐내고 있었다.
도시에 들어섰으니 약국과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보충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문득 바라본 주교의 궁은 더욱 운치 있는 모습이다. 마을은 관광객들로 인해 꽤나 현대적인 느낌이 들지만 구석구석의 골목을 거닐다 보면 여전히 중세 시대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아스토르가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조각상 그리고 역사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박물관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순례자들에게도 하룻밤 머무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가우디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겨두고 발길을 돌리는 일은 정말이지 쉽진 않았지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마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점심이 지난 시간부터는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나는 다시 외로움과의 싸움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뜨거운 뙤약볕을 견디며 걷다 보니 작은 마을이 등장했다. 무리아스 데 레치 발도. 몇 개의 알베르게가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지나며 살짝 들여다본 알베르게의 마당에는 이미 발을 씻고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고 있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부러운 마음을 다잡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멀찌감치 걸음을 옮기고 있는 레이몬드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오랫동안 길을 걸으셨고 그 뒷모습은 항상이지 "카미노는 이렇게 오랫동안, 깊이 있게 걷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다
오늘은 H를 생각하며 걸었다. 그 아이와 꽤 오랜 시간을 함께 걸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친구가 되었지만 마음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밟을 때마다 몇 번이고 선을 긋고 홀로 새벽에 길을 나섰던 나의 태도를 다시 돌아본다. 이번엔 그 아이가 나에게 선을 긋는 순간이겠구나, 하고 생각하자 마음이 괜히 시큰해져 온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 아이를 의식하며 걷고 있었나 보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인지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길이 닿는 만큼 걷자 언덕의 중턱에 마을이 나타났다. 입구에서 만난 친절한 동네 아저씨는 나에게 어느 알베르게가 좋은지 언질을 해주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떠나려는데 어제 만났던 자랑꾼 아저씨를 만났다. "아가씨도 빨리 왔네요"라는 말 한마디 건네셨을 뿐인데 그 속에서 은근한 경쟁심이 엿보였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 나는 인사를 드리고 다시 걸음을 옮겨 알베르게에 비로소 체크인을 마쳤다. 샤워를 하고 일기장과 책 한 권, 맥주 한 캔을 들고 테라스에 앉아 눈부신 햇살을 맞이하는 것은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레이몬드 할아버지와 우연히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되었고 손짓 발짓을 섞어 대화 아닌 대화를 하며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들어오셨다. 일본인처럼 보이던 그분은 할아버지와 내 저녁식사가 끝나자 나에게 "실례가 되지 않으면 커피 한잔 하겠어요?"라고 말을 건네셨다. 에스프레소 두 잔을 들고 알베르게 밖 벤치에 앉아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해가 저물어 가기 전부터 주위가 깜깜해질 때까지 세네시 간이 넘도록 말이다. 닮고 싶지 않은 어른이 있는가 하면 자꾸만 만나고 싶은 어른이 계시기도 한데 오늘 내가 만나 뵌 어른은 내가 지금껏 만나온 그 어떤 분보다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특히나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힘이 있는 눈빛은 깊지만 불편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깊이가 느껴졌다.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오랫동안 일을 하셨다던 아저씨는 본인의 이야기보단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셨다. 내가 떠나온 이야기와 앞으로의 선택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아저씨는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나에게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학생, 나도 오랫동안 해외생활을 해왔지만 그걸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 한국은 우리가 알다시피 일 외에도 알지 못하는 많이 존재하기도, 스펙이라는 것을 참 많이 따지는 것도 사실이네. 그래서 우리나라의 영특한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가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슬픈 일이지. 그런데 말이지, 시간이 흘러 내 고향, 내 사람들이 너무 그리워져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외국으로 나오곤 해. 결국은 이 곳도 저곳도 아닌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거지. 내 부인도 몸이 아파. 그래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살 준비를 하는데 이게 여간 힘든 게 아니야. 사실 외국에 나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정말 그게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방법인 것일까, 그곳의 생활을 청산해 한국에 돌아와도 변변찮은 집 한 채 사지 못하거든. 참 이상한 모순이야. 좋은 재능을 외국에서 쓰지 않고 한국에서 쓰면 어떻겠나?"
그리고 우린 한참 동안 저물어가는 골목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아저씨는 나에게 물으셨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술을 드시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아빠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좀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 그리고 말이지, 나는 해외에서 면접을 볼 때면 항상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네. 무언가에 미쳐본 경험이 있는가 하고 말이야. 나는 면접관으로 갔을 때 그것을 제일 먼저 물어보네. 공부를 잘하고 스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미쳐볼 수 있을 정도로 열정이 있고 집중할 수 있는 인물이 언젠가는 회사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네. 자네도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게. 그렇게 미쳐본 무언가가 있었으냐고 말이야.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무언가에 미쳐보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보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를세"
"아마 오늘 밤은 많은 별들이 뜰 거야. 산 중턱에 있는 마을은 불빛도 없고 더 많은 별들이 보이지. 은하수가 보일지도 모르겠네. 나는 내일도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천천히 길을 나설 테지. 또 만나자고"
6월 15일
무언가에 미쳐본 것이 있는가,
애써 하나를 생각해 낸다면 이 길을 걷기 위해 노력했던 일. 그래서 자꾸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 길을 걷는 나를 상상하고 결국엔 그 모습들이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던 길, 밀 밭 냄새와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던 일. 사실 이 것이 아니고서는 한 번도 무언가에 미쳐해 본 일이라는 것은 없었다. 부끄러운 밤이 깊어갔다. 아저씨의 말씀이 생각나서인지 아니면 저녁 끝자락에 마셨던 진한 에스프레소 때문인지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새벽 두 시, 난데없이 떠진 눈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나는 모두가 깊이 잠든 밤, 마당의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흔들리는 순간, 나에게는 항상이지 바람처럼 누군가가 머물며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건네곤 했다.
'이 것 또한 나의 업이고 또 복이겠지'
그 별들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