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 산 마르틴 델 카미노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빵과 버터 그리고 커피였지만 지친 순례자의 허기를 채우기엔 무엇보다 충분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는데 익숙한 얼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H가 먼저 길을 나섰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어제의 우리는 조금 서먹했다. 가까워졌다가도 아침 일찍 먼저 떠나버리곤 하는 내가 H에게는 야속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다. 많은 시간을 함께 걷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감정들이 밀려올 때마다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모두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아마 이번엔 그 아이의 차례인가보다.
동이 트는 새벽은 아름답다. 하루동안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호스피탈레로에게 인사를 건내고 아침식사만큼의 비용을 지불했다. 이대로 다음 마을로 넘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에 조금 더 머물며 거리를 조금 더 걸어보고 성당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인 새벽녘의 도시를 혼자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걷기 시작했다.
사실 이 곳에 조금 더 머무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가우디'의 건축물 카사 보티네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평생을 살며 가우디라는 이름은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가 설계한 건축물이 있는 도시를 지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이 레온이라는 도시의 가우디 건축물을 보기 위해 지도 한 장을 펼쳐들고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길을 물어야 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신 것인지 술냄새가 풍기는 두 젊은이가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는 나를 굳이 도와주겠다며 지도를 들여다보더니 결국 등교를 하는 여고생에게 대신 길을 물어 나를 이 곳에 데려다 놓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볼 수 있는 가우디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건축물과는 달리 레온이라는 도시의 건축물은 잔잔한 도시의 특성을 반영해 지어졌다. 하지만 가우디답게 신고딕 양식을 가우디 나름의 양식으로 바꾸어 자유롭게 석회암과 나무 등을 건축자재로 이용했으며 지하에는 창고를 만들었다. 건물의 모퉁이엔 원뿔형의 장식으로 마무리했으며 그 곳에서 레온이라는 도시를 조망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건물을 복원하기 위해 동상을 서물던 중 건물의 설계도가 발견되었으며 지속적으로 복구되어 오늘 날엔 은행 건물로 이용되고 있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련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가우디 동상 옆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모습, 아마 이 벤치에는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우디가 창작해낸 예술품을 오랫동안 올려다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간을 넘어서는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한참동안 올려보다 정신을 차리고 그제서야 나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쉬움이 남아서였을까, 발걸음이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을 돌아봐야만 했다. 사실 매일 걸음을 옮기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곳이든 마음이 그 어느 곳보다 오래 머무는 장소가 있기 때문인데 아마 나에게는 레온이라는 마을이 그런 의미를 지닌 곳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골목을 거닐며 설레이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잠시 순례자가 아니라 여행자가 되어 역사가 깊은 레온의 거리를 걷는 중이었다.
한참을 자박자박 걸으며 어느 기념품 가게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지고 싶은 무언가 앞에서는 어른도 잠시 아이가 되고 만다. 너무나 가지고 싶은 무언가를 채 가지지 못한 어른은 그 소유의 감정을 잠시나마 느껴 보고자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가질 수는 없지만 기억은 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가지지 못하는 상황과 세상의 불공평함을 원망했던 시간이 있었지만 나는 무언가를 '소유'하는 대신 '배움'의 시간을 선택했다. 이런 나의 선택들이 존중받는 시간들이길, 성숙되고 아물어져 가는 과정이길 바랬다.
앞서 걸음을 옮기는 순례자들 앞으로 눈부신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장면이 마치 시간 여행자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이 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기적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설과도 같은 기대를 이 한 장면에 심어놓았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한다면 나는 아마 호주로 떠나던 순간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너무나 소중했던 그 사람을 절대 놓치지 않았을 거라고 잠시 지난 일을 꺼내본다.
해가 점점 도시 구석구석을 비추기 시작했다. 레온이라는 도시는 어제의 왁자지껄한 모습이 모두 거짓인 것처럼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나는 어제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대성당 앞에서 다시 한참을 올려다보며 차마 떠나지 못하는 중이었다.
아름답다, 그저 한번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도시에서 나는 쉽게 떠나지 못하고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언제쯤 다시 이 길에 서게 될까, 그 때 나는 누구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을까. 나는 길을 모두 완주하지도 않고서 벌써 이 길 위에 다시 서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길은 그렇게 나를 다시 부르게 될테니까 말이다.
산 이시도르 광장에 있는 용서의 문을 지난다. 병이 나서 산티아고까지 차마 갈 수 없었던 사람들도 이 곳을 지나면 카미노를 완주한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이 곳의 아름다운 세공은 산티아고 대성당의 유명한 은세공문 전문가가 만들어낸 또 다른 아름다운 작품이다. 현재와 과거가 너무나도 잘 어우러진 마을이다. 꿈 속을 걷는듯한 기분으로 레온을 소중히 걸었다. 나도 그 누군가에게 마음의 무거운 짐들을 용서받길 바라면서 말이다.
순례자들이 길을 잃을까봐 바닥 곳곳에 가리비를 심어둔 레온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예뻤다. 바닥에 놓인 표식을 보다 문득 닳고 닳은 신발로 시선이 옮겨갔다. 얼마나 긴 거리를 걸어왔는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듯한 신발의 고단함, 신발이 낡아갈 때마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삶을 경험했다. 아마 오늘은 더 길고 긴 거리를 걷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미리 문을 연 마트에 들러 간단한 점심거리와 음료를 사서 가방 한 켠에 넣었다.
이제 약 300km를 앞두고 있다. 길을 걷는동안 시간과 날짜를 잊고 지냈다. 습관처럼 손목에 차고 다니던 시계가 피레네 산맥을 넘자마자 애석하게도 체인이 풀려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그 것도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길을 걸으라는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나는 배가 고프면 먹고, 쉬고 싶을 땐 멈춰서고, 울고 싶을 땐 소리내어 울 줄 아는 건강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떠나온 길 위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지난 밤, 충전하지 못한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할 겸 아쉬움도 달랠 겸 떠나는 길목에 있는 카페에 짐을 풀고 카페 콘 레체 한 잔을 주문했다.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켄 아저씨가 합석해도 괜찮느냐며 인사를 건냈다. 얼마 전 산볼 알베르게에 도착했지만 전화가 되지 않던 관계로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는 저녁, 전화가 있는 알베르게를 찾아 빗 속을 뚫고 다시 먼 길을 나섰던 아저씨. 그 날 먼 길을 떠나시는 모습을 보며 걱정을 했다고하니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셨다. 아저씨는 한국에 1년 정도 미군 파병으로 온 적이 있으셔서 한국인인 나를 만나서 꽤나 반가웠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알고 있는 한국어를 읊으셨다. 아줌마, 고마워, 여기요 같은 식당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들 말이다. 저 세 단어로 많은 것들을 해오셨다는 아저씨는 이미 마흔이 넘는 나이임에도 훈훈한 외모와 젠틀함까지 갖추고 계셨다. 아저씨는 아빠와 나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선 아저씨도 미국에 두고 온 가족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말을 듣지 않는 아들에게 매를 든 후 벽을 보고 서있는 벌을 내리시고선 티비를 보느라 세 시간동안 아들을 잊고 있던 아저씨가 부랴부랴 방으로 갔더니 망부석처럼 서서 울고 있는 아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는 이야기. 아마 너희 아빠도 나처럼 네가 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거야 라며 웃으시는 모습. 하지만 그 웃음이 그저 흘려보내는 웃음이 될 수 없는 건 아저씨의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딱 내 나이만큼의 아들을 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미어진다는 아저씨는 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되자 그 날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해 길을 걷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하루하루 길을 걸으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삶을 정리하고 계시던 아저씨는 걱정하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매일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집으로 전화를 거셨는데 얼마 전 내가 머물렀던 산볼 알베르게에는 전화기가 없어 아저씨는 가족들이 걱정할 것을 염려하며 다시 다음 마을까지 어둑어둑한 길을 걸으셨던 것이다. 아저씨의 부인은 아저씨가 산티아고에 입성하는 날에 맞춰 샌프란스스코에서부터 산티아고 대 성당까지 먼 걸음을 하신다고 했다. 그녀를 여전히 많이 사랑한다는 아저씨의 덤덤한 한 마디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고 말았다. 눈시울이 금새 뜨거워지고 말았다. 나보다 더 슬픈 아저씨 앞에서 차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실례인줄은 알았지만 나는 아저씨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자꾸만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가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해줄 수 있는 용기도,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먼 길을 떠나온 아저씨도 나에게는 너무나 대단하기만 한 사람들이었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말 끝자락이 흐려지셨던 아저씨는 나를 되려 토닥여 주시더니 먼저 길을 나서겠다며 나에게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남기고 길을 떠나셨다. 죽음 앞에서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아저씨도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만큼의 눈물과 아픔을 겪어내시며 오늘 내 앞에서만큼은 비로소 덤덤한 표정을 지으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마음이 진정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흘렀다. 해가 어느새 높이 떠올랐고 나는 걸음을 다시 옮겼다. 산 마르코스광장에는 국영호텔과 박물관이 으리으리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한 때 순례자 병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오늘 날 산티아고 기사단 본부가 위치하고 있다.
산 마르코스 수도원 벽은 우리가 그동안 지나왔던 마을의 풍경들을 담고 있어 지난 여정을 돌아보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소이다. 광장 가운데는 지친 순례자의 조각상이 있는데 이 곳에서 성당을 올려다보며 이 길을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해 보기도, 이미 이 길을 지난 수많은 순례자들의 삶을 축복하기도 했다. H의 길도, 유코의 길도 그리고 켄 아저씨도 마지막까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길 아주 간절히 바래보는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순례자는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고 순례자를 위한 스탬프도 남길 수 있다. 친절한 안내원의 도움으로 무거운 배낭은 입구에 놓아두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었는데 아침부터 부쩍 무거워진 생각을 쉬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박물관과 성당 건물은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은 조각 하나하나가 모두 섬세하기 그지 없다. 문득 올려다본 천장까지도 그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 모든 분위기 속에서 숭고한 느낌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이 곳을 떠나기 전, 성당으로 돌아와 잠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종교가 있진 않았지만 성스러운 공간에서는 언제나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오늘은 켄아저씨를 위한 기도였다. 아저씨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지켜봐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토닥여 레온을 벗어났다. 오늘도 두 갈래 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는데 길을 가던 주민이 자연스럽게 길을 알려주어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오늘도 뜨거운 뙤약볕과 자동차가 지나는 길을 걷게 되고 말았다. 감사의 시간을 위해 이 모든 상황들이 하나 둘 생겨나는 중이었나보다.
한참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했던 나는 뙤약볕과 넓은 들판에서 비로소 눈에 띈 건물로 들어섰다. 십킬로가 넘는 배낭을 던져두고 클라라 콘 리몬을 주문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젊은 청년 알바생은 타파스와 시원한 클라라 콘 리몬을 내왔다. 그들은 내가 길 위에서 먹어온 그 어떤 타파스보다 맛있었는데 아마 아침에 올린 기도에서처럼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이 뜨거운 길로 나를 안내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자 고된 하루에도 어느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한참을 걸어 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태극기를 걸고 가시는 모습이 반가워 인사를 건냈는데 그리 탐탁치 않아 하시는 내색에 나 역시도 그리 즐거운 기분이 아닌 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산티아고의 동상과 사진을 찍어달라는 그 부탁도 왜 그리 반갑지 않던지. 중년의 신사분은 나를 만나자마자 "언제부터 걸었어요?"라는 질문을 건내셨다. 내가 걷기 시작한 날자를 들으시고선 "아~ 나보다 늦게 출발했네. 나는 그 후에 걷기 시작했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어요"라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친숙한 말들이 이 곳에서는 나에게 잠시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카미노를 걷는데 누군가와의 비교가 필요한 것일까, 빨리 걷고 늦게 걷고의 문제가 아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위함이 이 길의 목적인데 누군가에게는 그저 길을 걷는 것만이 혹은 남들에게 내세우기 위한 자랑을 위함이 이 길에 선 목적인가보다. 나는 문득, 아무런 편견과 오해없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H가 보고 싶어졌다. 그는 무척이나 좋은 길동무였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산 마르틴 델 카미노라는 마을이다. 사람이 꽉 찬 옆 방과는 달리 늦게 도착한 덕분에 사람이 별로 없는 방으로 배치 되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 T오빠를 이 곳에서 만났다.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자꾸만 보고싶지 않은 어려운 사람과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건 아마 인생의 불문율인 모양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T오빠는 오늘도 역시 내 곁에서 택시를 탔던 이야기를 주구장창 해댄다. 나는 그저 말없이 맥주를 홀짝였다. 식사시간까지 불편해지기 싫어 빨리 걸음을 옮기신다고 이야기를 하신 중년의 신사분과 T오빠의 저녁 제안에는 끼지 않았다. 대신 맥주와 콜라 한캔, 과자, 바나나 하나로 저녁을 조촐히 때우기로 했다.
오늘 알베르게에서는 몇 일 전 내가 한국인으로 착각했던 베트남 친구 앤을 만났다. 외모만보고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냈는데 "한국 사람 아니예요" 라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지났던 친구. 오늘은 알베르게 앞 뜰에 앉아 강아지를 토닥이는 그녀 곁에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그녀의 부모님은 베트남에서 뉴욕으로 이민을 오셨다고 했다. 엄마는 여전히 가까이 살고 있지만 베트남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앤은 누구나처럼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어른이다. 그녀는 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이미 많은 한국인들과 일을 해왔기에 한국 문화를 잘 알고 있고 한국인들과도 잘 지내고오고 있다고 했다. 인턴으로 회사에 들어와 일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부모님의 돈으로 명품 가방을 사고, 비싼 커피를 마시며 보이는 것들에 무게를 두고 사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 그래서 그녀는 처음 나를 보았을 때 조금은 거부감 어린 시선을 보였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나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해준 것처럼 나는 외국생활을 하고 싶어 혼자의 힘으로 130번이 넘는 자기소개와 전지 한 가득 그려넣은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비로소 디즈니월드에 인턴을 갔던 이야기, 그리고 다시 호주로 가기 위해 매일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 사실 호주로 떠났던 건 바로 이 곳 산티아고로 오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잔디밭에서 해가 저물어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선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하나의 오해를 깨뜨릴 수 있었다. 몇 번의 눈 인사만으로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장소에 앉아 지난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편견없이 서로를 받아들였다. 아마 그 것이 이 길이 가진 매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You are so incredible! 깊은 한 마디를 던져준 그녀 덕분에 오늘 하루종일 물 먹은 솜처럼 젖어있던 마음에 햇볕이 가득 들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반짝거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뭉클해져 나는 그 마음을 담아 앤을 꼭 안아주었다. 그녀 역시 나에게는 반짝거리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6월 14일
H와 떨어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히려 더 잘된 일인데 기분이 자꾸만 쳐져버리고 마는 건 그 친구가 나에게 이미 너무도 좋은 길동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겠지. 무튼, 오늘도 역시 대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미국에서 열심히 디자인 공부를 하는 씩씩한 앤과 그녀가 나에게 전해준 반짝이는 눈빛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지만 아마 아침에 함께 커피를 마신 켄 아저씨를 나는 오래 기억하게 될 것만 같다. 암과 싸우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잘 정리하기 위해 이 길 위에 섰다는 아저씨의 어떠한 마음을 나는 자꾸만 돌아보지 않을 수 없어졌다. 우리는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그 것이 조금 길고 짧고의 차이일 뿐이라는 걸 아저씨는 이야기 해주신 것이 아닐까.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하루하루 행복하며 살기에도 너무나 짧은 순간들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