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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an 09. 2020

링겔 아래서는 늘 생각이 잠잠해진다

0. 매년 이맘때는 항상 아프더라. 연말에 그 해 목표를 마감하느라 무리하고 연초 첫 주 그 해의 플래닝을 마치고 나면 긴장이 풀려서 그런것 같다.


새벽에 구토증이 일어서 병원에 갔고 약 타서 회사 간다고 했더니 급성 위장염인데 지금 무슨소리하는 거냐고 감금(?) 입원행...  2시간 수액하나 맞고 30분 쉬었다가 다시 3시간 수액 하나 맞았다.


아 오늘 전무님하고 중요한 회의 있었는데. 어떡하지. 

머리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1. 본의아니게 링겔 침대에 감금당해서 폰배터리도 없고 노트북도 없고 그냥 옛날 생각이 많이났다.

종종 입원하던 지난 몇여 년의 병원 천장 데자뷰가 일었다.


난 항상 나를 아끼는 법을 몰라서 일년에 한두번 엄청 크게 아팠다.

체력과 정신력이 남들보다 좋은 거 같긴 한데 난 항상 역치를 넘겨버려서 그동안의 피로를 한번에 몸빵하곤 했고 학부생 때 세브란스(제일 가까운 병원)에 기어가듯 가면 늘 만나던 의사 선생님은 내가 아가씨 왜 올해 안오나 했지, 하면서 건강좀 제발 챙기라고 타박했다.


아 그때 진짜 여유 없었었는데.. 본의아니게 남들한테 asshole 이던 시절.

하루에 4시간 자면서 외국어고 다니고, 대학 와서도 전과 준비에 재수 실패랑 집안빈부격차 자격지심에,

공모전 1년에 10개씩 넘게 다니고 창업하고 인턴하고 초과학점하고 학회하고 진짜 미친 삶이었지.

아이디어뺏어간 팀이 수상하고, 진짜 믿었던 사람한테 뒤통수맞고 왜 난 열심히 해도 안되는지 몰랐었는데.


사랑도 내 상황도 직업도 안정되지 못해서 그런것도 있는데 일단 내가 나 자신을 되게 못 아껴주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살기 싫어지고 사방데 짜증부리고,

그게 뭐라고 알량한 경력 가지고 서툰 사람을 보면 필요이상으로 난 잔인하게 굴면서 각박한 삶을 살았다.


그냥 좀 즐겁게 최선을 다해 볼걸.



2. 선배 나 이제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

며칠 전 윤호선배한테 자랑하듯 말했다. 작년 말 늘 달고다니던 수면 장애에 섭식장애를 많이 고쳤다.

뭐 지금 번아웃와서 병실에 누워있으면서 할말은 아닌가.


2019년 뭐 많이 하지는 못했는데 마음 에너지가 많이 건강해졌고 튼튼해졌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성과에 늘 집중했던 지난날보다 더 큰 성과인 것 같다. 많이 안정됬고 건강하게 도전하는 기반이 쌓인 거니까. 

나이 스물일곱이 되서야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시작하는구나... 


2-1. 2017년부터 조금씩 나아지긴 했는데 2018년 센트비 다니며 모두에게 분에 넘치던 사랑을 받고

혼자 힘으로 싱가폴에서 공부하면서 꿈을 이루는 성취의 경험을 드디어 했다. 


그때부터 완벽에 대한 강박을 조금씩 버리려고 했고 그러면서 더 자유롭고 정서적으로 건강해졌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예전의 나는 참 같이 일하기 불편한 사람이었겠구나 싶다.


못하면 좀 어때. 그럼 다른사람은 다 잘해?

처음 하는 것에서의 가치를 믿기 시작했고 여러 사람의 입장을 들으면서 사람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강박을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떻게 보면 지난 날 오히려 세상에 솔직하게 덤벼서,

나 자신의 강박과 아집때문에 처절하게 실패해 봐서였겠지. 

10대 후반, 20대 초중반 참 외롭고 여유없었다.



3. 제제는 좋은 친구다. 내가 어떤 상황에 맞닥뜨려서 답을 못찾을때 종종 조언을 구할수도 있고,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제제를 처음 만난건 한 4년여 전인데 사실 그때부터 친하진 않았다. 최근에 우리 처음 만났던 때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제제를 처음 보고 "독선적이고 자기 하고싶은말만 한다" (대충 비스무리)라고 제제를 소개해준 내영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그런말했던거 기억은 사실 잘 안나는데

그때 제제가 진짜 독선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그런 말 했던 2015년의 나는 독선적이었던거 같다.


나 진짜 좁은 사람이었던것 같다. 잘못된 신념으로 최선을 다하던 때였던...후... 


어찌되었던 우리는 각자 사회에서 매운맛 보고 서로를 쇄신해 친구가 된게 신기하고

본인에 대한 첫인상을 나쁘게 가졌던 나를 그 사실을 알면서도 친구로 삼아준 제제는 진짜 대인배인것 같다.

난 그냥 한번 수틀리면 다시는 안보는데. 원래 은혜와 원수는 잊지 않는 거랬어. 



4. 정서가 불안해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마음이 뒤틀렸던 시기들.

사실 삶 자체가 원래 불안정한건데 그때 그 사실을 받아들일만큼 내 그릇이 되질 않았다.


그냥 계속 불안했고 불안하니까 욕심이 많았다.

프랑스어도 다시해야될거 같았고, 아 중국어가 요새 뜬다던데,

인턴도 해야되고, 창업도, 대외활동도, 공모전도, 전과도, 인간관계도, 유학도 봉사활동도.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자격지심이 고쳐지기도 했지만 초반엔 진짜 불행했다.

그냥 계속 불안했고 실패가 너무 처절했다.


많이 극복한 지금, 삶의 밑바닥 지혜를 길어올리면서 예전처럼 task에 집착하기보다는 즐기면서 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강박을 없애려고 하니까 내가 계속 미웠는데 없애지 말고 다스리려고 했다.


학생때 돈 백만원 이백만원이 없어서 그렇게 불안했었는데 그때 내가 철저하게 불안해봤던 경험이

지금 불안요소를 막고 젊을 때 뭘 준비해야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친구들과 선배들을 주위에 두고 힘들때 조언받을 사람들을 만들고, 운동하고, 저금하고, 보험들고, 엄마 아빠한테 해주기로 했던거 조금이나마 하나씩 해나가면서 앞으로 30년 40년 달려나갈 준비를 하면서 마음을 단단하게 하려고 한다. 어느 토양에서든 뿌리만 있으면 자리잡을 수 있는 법이니까.


성장은 결코 매몰이나 소진에서 오지 않는다.


4-1. 부산함이 많이 없어졌다. 마음이 앞선 욕심이 현실적인 야심이 되서 차근히 준비하는 느낌.

며칠전 상욱이는 나한테 왜이렇게 안정적이 됬냐고 했는데(?) 할말이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아니 일단 생전 처음 받아본 질문에 좀 신선했음.. 근데 돌아보면 정서적으로 단단해지긴 한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느낀 건가?



5. 삶의 무게 앞에 당당하자. 다 해 낼 수 있으니까.


1년 반 전에 인생이라는 칼날 위에서 춤추듯 살자는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jessiejisulee/45

정서적인 안정감을 가지려고 늘 불안을 없애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그냥 불안을 안고 가야될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의 다짐은 울면서 버텨보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그런 외침이었다.  자신에게의 발악이었던 것 같다. 그때 이악물고 버텨서 지금 이 손톱만한 경제적 커리어적 현실적 여유가 생겼고 훅 높아진 자존감이 생겼다. 자신감은 아직 없는거 같다ㅠ


커리어적인 불안(다시 스타트업 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외국계기업으로 온게 맞나, 희귀 직군으로서 이직시장에서 내 가치는 어떻게 잡지 등등)이나 월급쟁이로서 항상 가져가야 할 리스크(내가 하는 것과 별개로 시장상황에 따라 회사에서 내쳐질 수 있다는 것) 는 아직도 늘 견지하고 있다. 하고싶은 것도 해야할 것도 많고 저성장 시대에 노후대비도 해야되고 가족들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다 지켜야한다. 다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근데 유연하고 재밌게 하지 못한다는 법 없잖아?



행복해지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항상 불행하고, 
우리의 슬픔과 괴로움, 그 두려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마르탱 파주, <완벽한 하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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