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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ug 30. 2018

절망이 나를 지킨다

최악의 순간에 제 옆에 있어주셨던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0.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은 수업시간마다 두 명씩 현대 시 해설집에서 시를 골라 과 전체 앞에서 읽게 시켰다. 제2외국어에 치이며 정규수업 시수가 부족한 외고 학생들에게 한 수업당 두편씩이라도 매일매일 조금씩 훈련시키려는 의도였다. 


그 중에 기억이 남는 기억은 9번 친구가 읽어줬던 황인숙 작가님의 <슬픔이 나를 깨운다> 였다.




<슬픔이 나를 깨운다>, 황인숙 본문 중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준다.


(...)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모르겠어 …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은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한다.



1. 스스로 용돈 벌어서 대학도 다니고 유학도 가고 스스로 집도 구해봤다. 밤새서 공모전 하다가 내 아이디어를 차용한 옆 팀 기획안이 상을 타기도 했고, 3년동안 죽어라 열심히 살았는데 전과를 세번 실패하기도 해봤다. 가족보다 마음을 주었던 사람과 절연도 하고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만났다. 


본의아니게 다이나믹한 인생을 살면서 느낀건 살다가 인생에서 안되는 것도 있다 라는 사실이었다.

살다보면 실패좀 할 수 있고 요령없이 열심히만 하면 모두가 피곤해진다. 


돌아보면 아픈 순간들이었지만 그 시간의 슬픔은 항상 나를 깨웠다.



1.1  그렇게 나는 항상 불행할 때 글을 썼다.

<인턴일기2> 당신이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불행하길 바랍니다.

https://brunch.co.kr/@jessiejisulee/17



2. 성민이는 엊그저께 점심을 먹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전혀 가능성 없다고 생각한 길이었는데, 홧김이었지만 선택을 내린 후 최선을 다했던 내 자신에게 감사해."


역시 항상 날 깨닫게 하는 친구였다. 우린 지난 5년 간 참 많이 변했다. 한결같이 노력했기에 한결같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진로를 계속해서 피벗하면서 발버둥쳤고,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떳떳하고자 했다. 주저앉지 않고 어떻게든 해보기 위해 싸웠다.


그 순간 멈췄다면 난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미숙했던 내 자신이 문득 떠올랐다.



3. 난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분야가 생기면 항상 글 솜씨가 늘곤 했다.

원래가 감정적인 사람이어서도 그랬지만, 하고싶은 말도 보여주고 싶은 면도 셀수 없이 많았기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이 들었고,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시도들은 몇십번 중 한번 성공했고, 성공하지 못한 나머지 몇 십번의 시도들은 절망이 되고, 고민이 되고, 내 글감이 되었다.



4. 오늘 Nancy와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나는 나스스로에게, 그리고 Nancy에게 말했다.

"여기서 멈추기에는 나 너무 열심히 살았어."


취업준비를 하는 입장에서 플랜 B를 준비야 하겠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여기서 주저하기에는 난 너무 멀리 왔다. 오늘 서류지원에서 또 하나 탈락했다는 연락이 왔지만 앞으로 이런 연락을 수도 없이 받을 터였다. 이 탈락 한 번에 슬퍼하고 머뭇거리기에는, 지난날의 내가 너무 고생했다. 


하고 싶은 일과 잘 할수 있는 일 사이에서 계속해서 고민했고 여기서 멈추기에는 최선을 다한 과거의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 안된다.



5. 바닥을 찾을 수 없었던 절망의 순간, 그 억울함을 기억한다.


성민이가 무작정 덤볐던 자신에게 감사하다고 했고

황인숙 시인님이 슬픔이 나를 깨운다고 했듯이,

지난날 나의 절망이 지금의 나를 지킨다.


적당히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한번씩 들 때마다 뼈에 아로새겼던 그 억울함이, 절망이 나를 깨운다.



6. 내 인생이 잘 풀리기 시작한 것은 절망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나 자신을 쇄신한 이후부터였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일에 감정섞으면 피곤하니 쓸데없이 의미부여할 필요 없고, 모든 것/모든 사람을 내가 다 책임질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부터.


그러니 지금 절망감을 좀 느껴도 좋다. 다만 이 절망을 앞으로 잊지 말 것.

지금의 이 뼈아픔이 앞으로 나를 계속해서 지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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