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은 위대했다
입맛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식물도 그렇다. 각자의 취향이 있다. 식물도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자기 취향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가 주로 잎을 관상하는 관엽식물만 해도 생김새와 분위기가 각기 다르다. 잎이 작고 동글동글한 식물부터 사람 얼굴보다 큰 이파리와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식물까지 있어 내 공간과 취향에 맞는 식물을 천천히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식린이
식물 킬러 초창기였을 때는 식물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주로 관엽식물로 베란다를 채웠는데, 관엽식물은 우리가 실내에서 가장 많이 키우는 식물이고 주로 잎을 관상하는 식물이다. 여러 종류의 식물을 집에서 키워봤지만 관엽식물 관리가 제일 수월해서인지 지금 키우는 식물들도 관엽이 대부분이다. 한때는 관엽식물 중에서도 잎의 무늬가 화려한 각종 무늬 식물이나 희귀 식물에 꽂히기도 했는데 200개가 훌쩍 넘어가자 식물 키우는 재미는 사라지고 물 주고 관리하는데 급급해져서 식물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졌다.
'물 언제 줄 거야?'
'나도 물 줘야지. 내 흙이 마른 거 안 보여?'
포기?
식물들의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결국 식물을 지인과 가족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공간에 빈틈이 생기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수백 개의 식물로 실내를 빽빽하게 채우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상처하나 없는 완벽한 잎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는 것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집사인 나 먼저 숨 돌릴 틈이 있는 조금은 게으른 식물 집사가 되기로 했다.
관계
그리고 키우기 까다로운 무늬 식물이나 희귀 식물도 거의 키우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 곁에 묵묵하게 같이 버텨줄 식물이 제일 좋다. 화원에 가거나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키우기 무난한 식물들이 내 취향이다. 평범하지만 오래가는 관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