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분다. 따뜻함이 사라지고 한기가 돈다. 남편과 나는 땀을 흘리며 무거운 화분들을 안으로 들인다.
좋은 계절을 즐기던 화분들이 생존할 수 있을 만큼의 햇살량과 바람량으로 내년 3월까지, 앞으로 거의 5개월을 견뎌야 한다. 7개월의 호시절과 5개월의 인내의 시간! 다행이다. 그래도 좋은 시간이 더 길어서. 나는 화분들을 안으로 들이며 이렇게 화분에게 말을 건네며, 그들을 위로한다.
작년 겨울을 지내고, 화분 두 개를 처리했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지 못한 그들은 싱싱함을 완전히 잃은 채 고개를 푹 수그리고서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겨울을 힘들어한다. 생존의 필수조건인 일조량의 절대적인 부족과 추위 때문에 온기를 잃을까 봐 꽁꽁 닫아놓는 문들 때문에 신선한 공기의 양이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시절에 체력을 길러놓은 나무들은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어낸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호시절을 맞이하며 인생을 즐긴다.
사람에게도 어찌 호시절만 있을 수 있을까? 호시절 5개월에 인내의 기간 7개월로, 나무와 뒤바뀐 세월을 보낼 수도 있고, 심지어는 호시절 2개월에 인내의 기간 10개월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 장래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장 14절)"
세상에는 항상 빛만 비췰 수 없고, 항상 어둠만 내려앉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화분을 실내로 들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실내가 환한 거실일 수도 있고 어두운 창고일 수도 있겠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 내가 화분을 들이는 곳은 햇볕이 많이 들지 않는 곳이다.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하다고도 할 수 있다. 바깥보다는 찬 바람과 한기를 막을 수 있는 곳이기에 나는 이 실내로 화분을 들이는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편 4절)"
이 화분들에게는 이 실내가 햇빛이 내리쬐는 바깥과 비교해 볼 때 음침한 골짜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그들과 함께 하면서 최대한 그들을 돌보고 있다.(그래도 죽는 경우에는 내 능력 밖이어서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나도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던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화분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들이듯이, 그분도 나를 그래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들여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능하신 그분이 나를 그 음침한 곳에서 돌보시고 견딜 수 있게 힘을 주시고, 점점 그분의 형상을 닮게 하셔서, 다시 햇살 속으로 내놓으신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다. 그런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되었기에, 아무리 햇살 속에서 번성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이 그분의 은혜임을 알기에, 사람은 겸손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필요한 건강, 물질, 인간관계, 자녀의 형통 등 문제 가운데 빠져,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그 음침한 곳에 그분이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인간은 능력이 없어서 화분의 식물을 죽이기도 하지만, 그분은 우리를 보듬어 주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기를 원하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영적인 눈과 영적인 귀가 열리기를 바란다.
나는 실내로 화분을 들이면서,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이렇게 나를 들이시고 돌봐주신 그분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었다. 햇빛이 비치든,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든,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듯이, 이 화분들도 이 겨울을 무사히 이겨내어 기뻐하며 호시절을 다시 맞이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