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경 Apr 01. 2023

무거운 짐

토요일 오후에 결혼식이 있다. 머리 손질을 해야 한다. 


요즈음의 미용실은 예약제이다. 미리 전화하고 예약해서 가야 한다. 참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미용사도 자신의 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또 밥 먹을 짬도 낼 수 있기 때문이다.(예전에 보면 손님이 밀릴 때 미용사들은 거의 식사를 거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머리로는 이 제도의 합리성에 수긍이 가는데, 행동적으로는 이상하게도 이 제도를 나에게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가고자 하는 미용실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거나, 아니면 전화번호를 검색해서 미리 전화를 해야만 한다. 이전까지의 미용실은 그냥 가서 운이 좋으면 금방 머리손질을 하고, 아니면 좀 기다려서 머리를 하게 된다.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나는 미용실에서 잡지책을 뒤적거리거나, 손님과 미용사들의 온갖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들으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그곳은 나에게는 쉼의 장소였다. 그러나 미용실이 더 이상 나에게 쉼을 주기를 거부한다.  업무시간에 맞춰서 와서 업무만 보고 빨리 가라는 업무의 장소가 되었다.


다행히도 내가 애용하는 미용실은 아직도 예약제가 아니다.(예약제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애용하는 곳이 되었다.)  주 고객이 할머니들이고 옛날처럼 시간 날 때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는 두어 명의 할머니는 늘 와 계신다. 머리손질을 하러 오신 분도 있고, 그냥 놀러 오신 분도 있다. 도시에 아직도 시골 분위기를 풍기는 이런 미용실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신기하다. 할머니들이 주 고객이어서 패션잡지나 여성잡지가 비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기다리면서 할머니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세월의 지혜를 배우곤 했다.  그런데  미용실까지 가는데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불편함과 미용의 최대목적이 좀 더 멋을 내기 위함인데, 할머니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머리 모양이 별로 예쁘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내가 가고 싶을 때 자유롭게 가는 그 자유로움을 위해, 편히 앉아 쉬기 위해, 나는 미용의 최대목적을 희생한 것이다.


'차를 타고 오고 가고 하다 보면 예식장 시간에 좀 늦을 수도 있겠는데--' 


나는 할 수 없이 집 가까이 있는 미용실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걸어 가까이 있는 두 군데의 미용실을 갔으나, 두 군데 다 벌써 예약이 차 있다. 세 번째 미용실을 가니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태이다.(그때 시간이 오전 10시 15분경)

'이 미용실은 영업을 안 하나?'

나는 그냥 돌아서려다가 혹시나 해서 문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미용실 안 하세요?"

"아! 오셨어요? 지금 3분만 있으면 곧 도착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실래요?"


나는 또 다른 곳을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곧 미용실 원장이 나타나더니만 함빡 웃음을 띠며 문을 연다.

"이렇게 늦게 문을 여시는 건가요?"

"아니에요. 오늘 친구가 와서 같이 아침 먹고 오느라고."

뒤를 보니 친구가 웃으며 서 있다.


그렇게 나는 오래간만에 새로운 스타일의 머리모양에 만족해하며 그 미용실을 나섰다. 그런데 미용실에서 나오다가 바로 앞에 있는 부동산 중개소에서 이런 대화를 듣게 되었다.

"00 아파트를 어떻게 가야 하나요?"

부동산 사장님이 설명을 하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와 함께 가요. 제가 지금 그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나는 이분의 팔을 잡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의 반은 흰머리로 희끗희끗하다. '왜 염색을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걸으면서  이분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구를 방문하러 가세요?"

"아니에요."

"그럼 무슨 업무 때문에 가시는 건가 보네요"

"네."

"혹시 아파트 청소하러 가시는 건가요?" 차림새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너무 주제넘은 질문을 했지만, 이분은 별로 고까워하시지도 않고  스스럼없이 대답하신다.

"저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청소는 힘들어요."

"실례지만 연세가?"

"일흔셋이에요."

" 아! 그러세요?"

"전단지를 붙이러 가요."

"네?"

너무 솔직한 대답에 오히려 내가 당황을 했다.

"아이고, 그러세요? 배낭을 메고 계시는데, 전단지인가 보네요. 무겁지 않으세요?"

" 좀 무거워요."

"그럼 시작하시기 전에 들어오셔서 차 한잔 하시고 시작하세요."

"그래도 될까요?"


나는 이분을 모시고 들어가 차 한잔을 드렸다. 일흔셋 나이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전단지를 붙이러 오시다니. 마음이 아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분은 지하철을 타고 다른 도시에서 전단지를 붙이러 이곳까지 오셨다고 한다.  이분에게 이 지역은 정말 낯선 곳이었다.

"어디 어디를 붙이셔야 하나요?"

세 군데의 아파트 이름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 아파트들이 어디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 이야기 중에 이분은 장가간 아들이 두 명 있다고 하신다.

"장가간 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들이 화달짝 놀라면서 '엄마, 무슨 일이세요?'라고 해서 이제 전화를 하지 않아요. 단순한 안부전화였는데 아들이 너무 긴장하는 것 같아, 이제는 아들이 거는 전화만 받고 있어요."

나는 이분의 아들들이 엄마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모의 존재가 그들의 삶에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해 자신들이 열심히 인생의 울타리를 치고 있는 중이니 차라리 가만히 계셔 주시는 것이 새 식구인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인지, 그들의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지만, 이분의 말투에서 섭섭함과 허전함을 동시에 느꼈다.

"아이고, 요즘 젊은 사람들, 다들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아시잖아요. 아마 그래서 그럴 거예요." 나는 어쭙잖은 변명으로 어쭙잖게 그분을 위로하려 했지만, 나 자신도 그 말에 설득이 되지 않아 멋쩍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이분이 진짜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신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 보이스피싱에 가담했어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이 연세의 할머니가 보이스피싱이라니? 피해를 입었다는 말인가? 아님 피해를 입혔다는 말인가?'

"일 년 징역을 살게 되었어요."

이분은 고해성사를 하듯 나에게 말씀하신다.

"무슨 뜻인가요?"


"전단지 붙이는 일이 너무 힘들어 교차로를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일당 8만 원이라는 일자리가 눈에 들어왔어요. 전화를 했더니만 나이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한번 해보실 거냐고 또 묻는 거예요. 저는 일당이 높아서 기꺼이 하겠다고 했죠.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자기가 말하는 주소에 가서 준비해 놓은 돈을 수거해오기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불러주는 통장에 입금해 주면 되는 일이래요. 저는 돈놀이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한 번은 부동산사장님께 이천만 원, 한 번은 관리소장에게 이천오백만 원을 받아서 입금해 주었어요. 그런데 세 번째 장소에 가다가 경찰에 잡혔어요. 저도 세 번째는 이 일이 좀 이상하기는 했어요. 절대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사정했는데, 붙잡힌 그 자리에서 경찰이 남편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자식들에게는 알리지 않더군요. 남편은 웬 청천벽력 같은 소리냐고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요. 며칠 전 법원에서 판결이 났는데 일 년 징역형을 받았어요.  남편은 오만 걱정을 다 하고 있는데, 오히려 저는 담담해요. 일 년, 감옥에 가 있을 각오를 하고 있어요. 옛날에 지하 단칸방에서 9년을 산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너무 힘들었거든요. 대통령도 감옥 가는데, 저라고 적응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안 돼요. 안돼. 감옥 가심 안 돼요. 무슨 그런 일이--- 언제 재심이 있나요?"

"한 달 뒤에 다시 재판이 있어요."

"제가 기도할게요.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아뇨. 이렇게 차도 대접해 주시고,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 못 한 이야기도 들어주시고. 정말 감사해요. "

"감옥은 안 돼요. 제가 오늘 결혼식이 있어서 점심을 대접해 드리지 못하네요. 점심은 어떻게 하세요?"

"요즘 편의점이 너무 잘 되어 있더라고요. 김밥 사서 먹으면 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주객이 전도되어서, 나는 이분의 형편이 안타까워 눈물이 나 펑펑 울고, 이분은 오히려 자신은 담담하다고, 괜찮다고 나를 진정시키신다.  지금까지 마음속에 꽁꽁 뭉쳐둔 이야기들, 아들에 대한 마음과 자신의 문제에 대해 처음 만난 나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게 되어서 홀가분하시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저 무거운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전단지라도 같이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 군데의 아파트를 다 다니시려고 하면 힘이 드실 텐데,  또 요즈음의 아파트들은 현관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야 들어갈 수가 있는데 하는 걱정이 무겁게 밀려온다.

"어떻게 들어가시려고 하세요?"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나올 때 들어가야죠."

"아이고, 시간이 걸릴 텐데요. 혹시 다 끝나시면 이곳에 다시 들리세요. 목이라도 축이고 가시게요."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잊지 않을게요."


무거운 배낭 때문에 처진 어깨와는 달리, 힘든 인생살이에서도 구김 없는 미소로 나를 바라보시는 이분이 너무 안쓰러워, 가시고자 하는 아파트 입구까지 이분을 배웅했다. 그리고 혹시나 화장실을 가시고 싶으시면 저기에 있는 상가 화장실을 사용하실 수 있다고 미리 장소를 가르쳐 드렸다. 멀어져 가는 이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분의 일이 수월하게 빨리 끝이 나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소망했다. 오늘 이 분을 만나려고, 나는 낯선 미용실을 방문한 것 같았다.


학교에서 청소하시는 분들을 보면, 나는 항상 미안함을 느낀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의 각자의 형편과 사정을 나는 알 수는 없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어떤 요인들의 결과인지는 알지 못 하지만, 아주머니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저 청소하는 자리에 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또한 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보다 겉으로 보기에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공평의 저울추가 기울어진 것에 대해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 이 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마음이다. 인생마다 각자의 어려움과 굴곡은 있지만, 일흔이 지난 나이에 아직도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시는 그 모습이 나의 마음을 저리게 한다. 어깨가 무너질 듯 무거운 배낭을 더 이상 지지 않고서 인생의 비탈길을 편안히 내려갈 수 있으시기를. 봄날, 하얀 목련꽃이 소리 없이 지듯 그렇게 우아하게 인생을 마감하실 수 있으시기를, 나는 이분을 축복하고 축복한다! 


P.S.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 give you rest"(Matthew 11:28)






작가의 이전글 인생의 방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