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우연찮게 ‘쓸모’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제 회사 생활의 모토이기도 해서 낯설지는 않지만, 그럴수록 문득 나 자신의 쓸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 읽었던 한 책이 떠오릅니다. 다산 정약용의 생애를 다룬 책이었는데, 그가 어느 양반집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집에는 수많은 하인들이 있었고, 놀랍게도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각자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약용은 그 장면을 보며, 사람을 능력과 나이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한 집주인의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듯 우리는 종종 ‘쓸모없는 것’은 제외하거나 버리며,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사람을 배치하지 않곤 합니다. 그런데 그 집의 주인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쓰임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전제 아래에서 가능한 일이었고, 저는 그 점에 대해 정약용이 감탄했다고 이해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 이후로 ‘사람은 누구나 쓸모가 있다’는 생각을 깊이 간직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살면서 우리는 자주 ‘쓸모 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구분 속에 놓이게 됩니다.
누군가가 직접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말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의심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되고, 세상에는 의미 있는 역할이 됩니다.
우리의 쓸모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타인의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존재 자체, 그리고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는 감사의 마음 위에 성실히 쌓아 올리는 삶의 태도 속에서, 나만의 쓰임새는 만들어집니다. 그것은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적인 쓰임새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며 서서히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삶의 의미를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결국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의미 없다고 여겼던 시간조차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 놓았던 삶의 조각들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또 다른 이의 희망이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누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살아온 과정을 통해 서서히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 쓰임이 다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그 자리를 조용히 다른 이에게 건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음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야, 비로소 나의 쓰임은 완성됩니다. 그때 우리의 존재는 이 세상을 잠시 거쳐 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어지게 됩니다.
삶은 누군가에게 내가 ‘쓸모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나만의 ‘쓸모 있는 순간들’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는 일, 그 자체가 우리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쓸모 있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