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미국에서 한 교수님 댁에 머물며 자취를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집은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집이었는데, 여름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숨죽이고 있던 거대한 바퀴벌레들이 갑작스레 움직이기 시작하곤 했습니다. 마치 "들켰다!"는 신호라도 받은 듯 부리나케 도망가는 녀석들. 크기도 크기지만, 이들의 영악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잡으려 들었지만, 곧 알게 되었습니다. 이놈들은 나의 움직임을 읽고,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한 뒤 반대 방향으로 달아난다는 사실을요. 그 순간순간, 나와 녀석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팽팽히 감돌았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대치는 도진 개진, 누가 더 영리한지 겨루는 묘한 싸움 같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문득 그 바퀴벌레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현 정권을 바라보며 느낀 기시감 때문입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바퀴벌레들은 도망가는 최소한의 본능이라도 보여줍니다. 그러나 현 정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국민이라는 주권자가 발을 구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의 눈앞에서 뻔뻔하게 활보하고 있습니다.
수사 협조는커녕, 탄핵 심판에도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며, 모든 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본 그날의 참혹한 사건조차 부인하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이 태도는 바퀴벌레의 본능조차 밑돌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개 돼지보다 못하다는 말은 개 돼지 들에 대한 모욕이다." 맞는 말입니다.
개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돼지는 주인이 부르는 소리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주권자인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국민의 권위를 짓밟는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요?
바퀴벌레는 최소한 주인이 다가오면 겁을 내고 숨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형국은, 주인의 발소리에도 끄떡하지 않는 오만함과 무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모습이야말로 바퀴벌레보다 못하다는 비유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국민이 주인이고, 정권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주권의 기본 원리가 무시되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주인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국민의 의지에 반하는 그 어떤 권력도 오래갈 수 없음을 역사는 늘 증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굳이 바퀴벌레와 현 상황을 대비해서 이야기한 김에, 그 미국의 오래된 자취 집을 떠올려봅니다. 그 집을 떠날 때까지 바퀴벌레와의 사투를 벌였고, 결국 그 수가 현격히 줄기는 했지만, 아예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입니다.
문제를 줄이고 고쳐나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방심하거나 나태해지면 언제든 그늘 속에서 숨어있던 바퀴벌레 같은 그들은 다시 고개를 들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와 현재를 반추하며,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권자인 국민으로서의 책임이자 의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