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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밤, 무하와 후스가 건넨 질문

행복을 넘어 복된 삶을 일깨운 프라하의 황금빛

by 은하수반짝
슬라브 서사시를 그리고 있는 알폰스 무하와 그의 작품들

숙소 아래에는 알폰스 무하(1860~1939)의 기념품 상점이 있었다. 엽서, 머그컵, 노트, 스카프까지 그의 그림이 새겨진 물건들이 여행자를 붙들고 있었다. 그는 ‘아르누보’라는 예술을 완벽하게 구사한 화가였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이라는 이름처럼 19세기 말 산업화의 차가운 기계 미학에 맞서 자연과 곡선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에서 태어났다. 꽃과 덩굴의 자연적인 형상과 여인의 머리칼처럼 흘러내리는 곡선이 중심을 이룬다.


성비투스 대성당에는 무하가 남긴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다. 유난히 인물의 표정이 섬세했고, 붉은색, 청색, 황금빛이 강렬하게 어우러져 성당에 들어오는 빛을 신비롭게 바꿨다.

성 비투스 대성당에 무하가 남긴 스테인드글라스

“아빠, 여기만 사람이 많아. 역시 무하의 그림이 제일 화려하고 이쁘다.”

“엄마, 가운데에 어린이가 두 손을 모으고 있어. 기도하는 건가?”

“아마, 성 바츨라프일 거야. 옆에는 할머니 성 루드밀라이고.”

“아빠가 문제 낼게. 저 사람들 머리 위에 있는 둥근 원은 뭘까?”

온유가 대답했다.

“하늘에서 빛이 내린 건가? 착한 사람이 쓰는 둥근 모자 같아.”

“오오. 제법인데. 성인이라는 걸 보여주는 후광이야.”


무하의 작품은 단순한 종교화가 아니었다. 9세기 체코에 기독교를 전한 슬라브 선교사, 성 키릴로스와 성 메토디우스가 있었고, 그들의 발 아래에서 두 손을 모은 어린 성 바츨라프가 순수한 눈빛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이를 통해 체코가 신앙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지켜 온 역사를 화려하게 새겨 넣었다.

무하의 작품은 지금 우리가 보아도 여전히 아름답고,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로맨틱하다. 파리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는 늘 조국 체코를 그리워했다. 결국 화려한 명성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20년의 세월을 바쳐 20점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했다. 민족의 역사와 신화를 담아낸 이 거대한 연작은 억눌린 체코인들에게 자긍심을 찾아주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한 뒤에는 우표와 지폐 디자인까지 맡아 나라의 얼굴을 새롭게 세워주었다. 그래서 체코인들에게 무하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예술로 민족의 혼을 지켜낸 영웅으로 기억된다.

프라하에는 또 다른 영웅이 있다. 바로 구시가지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얀 후스 신부다. 대부분의 도시 광장 중앙에는 왕이나 장군의 동상이 자리하지만, 프라하에는 순교한 신부의 동상이 서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얀 후스(1369~1415)는 카렐 대학의 존경받는 교수로서 라틴어가 아닌 체코어로 가난한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하지만 당시 카톨릭 교회는 면죄부 판매로 부를 쌓고, 신부들은 부패에 물들어 있었다. 그는 이것을 고발하며 “성경이 교회보다 우위에 있다”고 외쳤다. 성경을 체코어로 번역해 민중에게 보급하려 했지만, 결국 로마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려 재판을 받고 화형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단순한 신앙 사건이 아니라, 억눌린 민족에게 언어와 정체성을 지켜낼 힘을 주며, 체코 민중이 외세에 저항하는 불씨가 되었다. 또 놀라운 것은 그가 100년 뒤 종교개혁자 루터의 등장을 예언했다는 사실이다.

프라하 광장 중앙의 얀 푸스 신부 동상


다솔이가 동상 앞에서 말했다.
“아니, 성경을 보급하려던 사람을 왜 죽여?” 딸의 질문에 남편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성경을 사람들에게 풀어주면 교회 권력이 사라질까 봐 겁난 거야. 치킨집 비밀 양념 레시피를 공개하려는 사람을 그냥 두겠어?”
“아, 그랬구나. 근데 어떻게 죽으면서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 믿을 수가 없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무하와 후스의 삶은 분명히 말한다. 자기 인생이라 해서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물론 모두가 예술을 위해 20년을 바치거나, 신념을 위해 화형대에 설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일깨운다. 행복을 넘어, 누군가에게 빛이 되는 삶, 바로 복된 삶의 가치를 말이다.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직장과 가정, 일상 속에서 크든 작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체코에서의 마지막 밤, 프라하의 밤은 말 그대로 낭만으로 물들어 있었다. 강변 벤치에 앉아 흑맥주를 홀짝이며 황홀한 야경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카를교 위로 붉은 노을이 번지자, 다리와 성비투스 대성당, 프라하성이 차례로 노란 조명을 밝히며 저녁 하늘을 물들였다. 블타바 강은 거대한 거울처럼 변해, 성과 다리, 성당의 불빛을 그대로 품어냈다. 물결이 출렁일 때마다 금빛이 부서졌다 이어지며 살아 있는 그림처럼 빛났다. 온유는 그 황홀한 풍경을 놓치지 않겠다며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렀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순간이 너무 행복해 남편과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어른이 되면 여기 프라하에 다시 오자.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비춰주고 있을까?”

이 닭살 돋아도 중요한 질문을 아이들에게 건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프라하를 물들인 복되고 깊은 빛깔 덕분이었을 것이다.

온유가 필터를 사용해서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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