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취존중-
당신은 민초단인가요? 반민초단인가요?
설빙 민초 빙수, 오리온 민트 초코파이, 오예스 민트초코, 민초 서울우유, 좋은데이 민트 초코 소주, 오레오 민트 초코, 민초송이, 민트초코 라떼, 바프 민트초코 아몬드, 배스킨 라빈스 민트초코 봉봉... 작정하고 민초단을 열광하게 하는 리스트입니다.
호불호가 명백히 갈렸던 민초, 이제는 강력한 대세입니다. 소수의 마니아층에게야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템이지만, 최근 몇 년간 셀럽이나 연예인들의 민초 호불호 논쟁을 통해 재미를 선사하면서, 그 특유의 맛이 개운한 맛이냐, 치약맛이냐를 두고 민초단과 반민초단이 각각 집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용에 상관없이 적극적 소비자가 늘어났고요. 자기 입맛에 맞는 걸 먹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개인의 입맛이 돈이 된다는 건 신기한 일입니다. 이게 뭐라고....
역사적으로 구석기/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이런 시대구분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생계수단을 둘러싸고 사람들은 갈등하고 경쟁합니다. 생계수단을 더 많이 소유하고, 그를 나눠줄 강력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관계가 그 시대 전체의 구조와 특징을 결정한다는 거죠. 더 가진 사람은 자신이 가진 생계수단을 지키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생계수단을 얻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왔다는 거예요.
시대에 따라 새로운 계급들, 새로운 억압 조건들, 새로운 투쟁 형태들로 낡은 것들을 대체했을 뿐, 늘 생계수단을 둘러싼 갈등이 시대를 바꿨다고 보는 사람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적 유물론 얘기입니다. 관념적인, 철학적인, 정치적인 특성들이 시대를 바꾼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생계수단(두 사람은 이것을 생산수단이라고 불렀습니다)을 둘러싼 갈등 관계에 의해 시대는 변해왔다는 거죠. 그리고 이 경제 관계에 의해 각 시대의 철학, 도덕, 사회, 정치, 문화가 결정되었다는 경제적 결정론도 함께 주장해왔습니다. 먹고사는 생계 문제는 한 사람에게도, 한 가정과 국가에게 있어서도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문제였다는 얘기입니다.
이 해석대로라면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철학의 발달이 아닌, 시민과 노예의 경제적 관계인 노예제 덕분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그러니까 경제적인 모든 일들은 노예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각종 문화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직접 민주정이 나타날 수 있었다는 거죠. 근대에는 공장, 토지, 자본에 의한 대규모 자본가가 등장했는데, 혁명을 통해 농부들을 농노로 묶어놓고 있던 귀족 계층이 무너졌잖아요? 이로써 농부들이 공장 노동자로 이동하게 되었고,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로 시대가 바뀌게 된 거라고 해석할 수 있겠죠.
오늘날은 어떤 시대인가요?
정보와 지식, 더 나아가 개인의 취향과 체험이 돈이 되는 시대입니다. 취향을 섬세하게 읽어내고 그를 반영한 서비스나 제품, 그리고 그 취향의 체험 자체를 상품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중요한 자원이자 생산수단인 거죠.
--정해진 시간에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수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공중파도 보긴 하지만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시즌별 몰아보기), 내가 원하는 내용만 모아주는(취향 큐레이션이라고 합니다) 넷플릭스가 훨씬 돈이 되죠.
--어디에나 있는 매장에서 키오스크만 거치면 빠르게 한 잔 들이킬 수 있는 체인점 커피도 인기입니다. 하지만 도쿄의 블루보틀 아시아 1호점은 대기시간만 2시간 이상입니다. 주문 후 커피를 받는데만 30-40분이 걸리죠. 커피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소비자들은 주문하면 그 때서야 커피콩을 저울에 달고, 갈아서, 한 잔씩 만드는 블루보틀 특유의 슬로우 핸드 드립 방식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자신의 취향을 즐기는 동시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두 시간 이상 줄은 선 자신의 경험을 소셜미디어에서 전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갑니다.
이 정도면 마르크스도 개취는 새로운 생산수단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까 합니다. 심지어 내가 맛보지 못한 경험을 대신 체험해주고, 보여주는 사람들은 유튜버,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영향력을 만들어냅니다. 미처 몰랐던 내 취향을 발견하기도 하고, 이건 진짜 아니다 싶은 내 정체성을 발견하기도 하거든요. 더 신박한 경험을 들려줄수록, 거기서 매력을 발견한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별풍선, 좋아요, 광고노출이라는 권력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내 취향과 가치를 존중해주는 브랜드는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심지어 열성당원으로서 여기저기 추천도 합니다. 내 취향을 존중받기 바라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적극적인 MZ시대의 특징에 SNS의 발전이 더해지면서, 개취는 개인 차원을 넘어 기업의 제품과 브랜드 가치, 사회의 관심사까지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